한국인 남성 무분별한 성매매로 필리핀 여성과 사이서 태어난 혼혈아, 한국에 대한 분노 키워
올봄 대학생 8명 의기투합 모임 결성, 코피노 알리고 현지와 가교役 자처
20일 오후 서울 한강시민공원 망원지구에 ‘Walk with Kopino(코피노와 함께 걷다)’ 문구가 적힌 흰 티셔츠 복장의 청년 40여명이 모였다. “파이팅” 외침을 시작으로 이들은 필리핀 국기와 태극기를 들고 양화대교를 향해 힘차게 발을 내디뎠다. 화창한 날씨에 나들이 나온 시민들은 “코피노가 뭐지”라며 이들을 바라봤고, 다리를 지나던 운전자들도 힐끔힐끔 행렬에 눈길을 보냈다. 한낮의 따가운 햇살에도 이들은 묵묵히 양화대교와 서강대교를 건너며 시민들에게 코피노(한국인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 주로 성매매로 태어난 아이들을 지칭)의 존재를 알렸다.
이날 행진은 명지대, 홍익대 등의 대학생 8명이 동남아 성매매로 태어나는 아동을 줄이기 위해 올해 4월 결성한 ‘Asian Bridge for Children(이하 ABC)’의 코피노 알리기 캠페인이었다. 명칭에 다리(Bridge)가 들어간 것은 동남아 성매매 근절에 앞장 서 현지 국가와 한국을 건강한 관계로 잇겠다는 의미. 때문에 캠페인 장소도 자연스럽게 한강 다리로 정했다. ABC는 올해 6월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모집한 80여명의 참가자와 함께 가양대교와 성산대교를 건넜다.
캠페인을 기획한 김훈호(26ㆍ명지대 4년)씨는 “일본군 위안부라는 아픈 역사를 가진 한국이 성관광이라는 이름으로 동남아 국가를 침략하고 있어 부끄럽다”며 “오래 전부터 코피노 문제가 불거졌는데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 이를 알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김씨가 지난해 11월 서울의 한 사립대 학생, 교수, 교직원 등 10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결과 동남아 성관광 존재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72%가 ‘알고 있다’고 답했지만, 주요 고객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아느냐는 질문에는 87%가 ‘모른다’고 답했다.
김씨는 실태조사를 위해 올해 2월 최근 한국인이 많이 찾는 관광지인 필리핀 앙겔레스와 세부를 2주간 다녀왔다. 김씨는 “현지에서는 한국인 남성이 길에 서있기만 해도 젊은 필리핀 여성이 다가와 한국의 밥 한끼 정도 금액에 성매매를 제안했다”며 “성관광을 목적으로 간 사람이 아니더라도 쉽게 일탈에 빠질 수 있는 환경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필리핀은 가톨릭 국가라 낙태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한번의 쾌락이 해당 여성에게는 씻을 수 없는 고통을 남긴다”고 덧붙였다.
코피노의 비극은 부메랑으로 돌아와 현지 한인을 겨냥한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많다. 김씨와 함께 필리핀을 방문했던 박찬빈(24ㆍ명지대 3년)씨는 “친아버지에게 버림받고 힘들게 생활하는 네 살부터 20대 청년까지 40여명의 코피노를 만나면서 한국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나 분노를 느껴 마음이 아팠다”며 “필리핀 사회의 반한 감정과 유학생 납치 등 최근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사건도 이런 분위기에서 생겨났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국제시민단체의 조사와 미국 국무부 인신매매보고서 등에 따르면 코피노는 2006년 1만명 가량이었다가 2013년 2만명으로 7년 만에 두 배 가량 급증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해외관광만 가면 성매매에 대한 범죄인식이 느슨해지는 여행객의 그릇된 인식을 바로잡기 위한 교육 등 사전 예방을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꼽고 있다. 이날 행진에 참여한 청소년 성매매 예방센터 ‘탁틴내일’의 김미경 사무처장은 “외교부가 여행객에게 경고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등 다양한 수단을 통해 해외 성매매가 명백한 불법임을 알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ABC의 행진은 사람 통행이 가능한 한강 다리 21개를 모두 건널 때까지 계속될 전망이다. 박찬빈씨는 “최소한 캠페인에 참가한 청년들은 해외 성매매를 하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후원도 없고 소규모 활동이지만 계속 걷다 보면 한국 남성의 불명예를 씻는 날도 올 것”이라고 희망했다. ABC는 11월 마포대교와 원효대교를 건널 계획이다.
글ㆍ사진 장재진기자 blan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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