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관계에 개선의 싹이 텄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19일 박근혜 대통령을 예방한 모리 요시로 전 총리를 통해 보낸 친서에서 올 가을 국제회의를 계기로 한 정상회담 개최를 희망했고, 박 대통령도 사전 준비를 전제한 원칙적 수용 의사를 내비쳤다. 아베 총리는 친서에서 “대화를 거듭해 내년이 한일 양국에 좋은 해가 되도록 상호 관계개선을 위해 노력했으면 한다”며 정상회담을 요청했고, 박 대통령은 “내년은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이라며 “양국이 미래지향적 관계로 발전하길 기대한다”고 화답했다. 그 동안 아베 총리는 여러 차례 한일 정상회담에 의욕을 표했으나 공식 요청은 이번이 처음이며, 박 대통령이 일본측의 공식ㆍ비공식 요청에 긍정적 반응을 보인 것 또한 마찬가지다.
아베 총리가 언급한 ‘올 가을 국제회의’는 10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리는 아시아ㆍ유럽 정상회의(ASEM)와 11월 중국에서 열리는 아시아ㆍ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호주 브리즈번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두 정상이 23ㆍ24일 유엔총회에 함께 참석하고 숙소도 같은 호텔이어서 정상회담을 앞둔 간단한 비공식 접촉도 가능하다. 정상의 만남이 연내에 성사될 경우 한일 양국은 내년 국교정상화 50주년을 지금보다 한결 따뜻한 분위기에서 맞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런 기대는 양국의 정상회담 준비 자세, 특히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일본 측의 전향적 자세와 단단히 엮여있다. 박 대통령은 “과거 한일 간 정상회담을 개최한 후 양국관계가 잘 풀리기보다 오히려 후퇴하는 상황도 있었음을 교훈으로 삼아 사전에 잘 준비해 나갈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와의 정상회담을 거부해 온 자신의 태도에 대한 해명이자, 그저 만나서 악수하고 헤어지는 정상회담이 아니라 현안 해결에 기여할 수 있는 정상회담을 하자는 역(逆)제의이기도 하다. 더욱이 “쉰 다섯 분밖에 안 남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생존해 계신 동안 명예를 회복시켜 드려 한일 관계가 잘 발전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소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전이 있어야만 진정한 의미의 정상회담에 임할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시급한 것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양국 국장급 협의의 잠정 타결이다. 모리 총리의 청와대 방문 직후 도쿄에서 열린 4차 협의 또한 지난 7월의 3차 협의와 마찬가지로 제자리걸음만 거듭했다. 양국 외교당국과 정권의 적극적 개입으로 잠정 타결안을 서둘러 도출할 수 있어야 한다. 금전적 보상 다짐보다 ‘본인 의사에 반한’ 위안부 동원의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고 반성하는 게 중요하다. 아울러 양국의 정치적 타결을 섣불리 걷어차지 않으려는 당사자들의 절제 또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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