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ㆍ역사 주제 2개 특별전 신선
프랑스 작가 위주 본 전시는 밋밋한 편
30개국서 온 161팀 작품 전시
천장에 매달린 동아줄에 꽃이 주렁주렁 달렸다. 죽음을 상징하는 형장의 매듭과 지상의 가장 아름다운 생명이 만나 ‘천국의 길’로 재탄생한 거다. 꽃잎이 어우러진 바닥의 흙무덤에선 뭔가 들썩이나 싶더니, 순식간에 사람의 팔과 다리가 뻗어 나온다. 무덤 속에서 일어난 무용수는 신들린 듯 위무의 몸짓을 펼친다.
20일 개막한 ‘2014 부산비엔날레’ 특별전에서 선보인 설치미술작가 금선희의 퍼포먼스 작품 ‘천국의 문, 화해’다. 전후(戰後) 일본 사회의 차별을 견디다 못해 북한으로 돌아갔으나 반체제 인사로 몰려 죽임을 당하거나 소식이 끊긴 재일조선인들을 애도하는 작품이다. 재일교포 3세인 작가에게는 이들의 ‘귀국’이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작가는 “죽었으나 죽지 못한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 작품은 부산비엔날레의 두 특별전 중 ‘아시안 큐레토리얼’의 일환이다. 한국, 중국, 일본, 싱가포르 4개국에서 추천한 젊은 큐레이터들이 만나 바다를 주제로 엮은 전시다. ‘천국의 문, 화해’도 ‘바다’와 ‘부유하는 이산인의 삶’을 연결한 작품이다. 이 외에도 영상과 퍼포먼스, 음향과 설치미술이 결합된 실험성 짙은 작품들이 전시된다. 부산 수영구의 고려제강 수영공장을 전시장으로 활용했다. 콘크리트 바닥과 철골 구조물이 별다른 장식 없이 그대로 드러나 신선한 느낌을 준다.
또 하나의 특별전 주제는 ‘비엔날레 아카이브’다. 한국 작가의 해외 비엔날레 출품작을 통해 현대미술사 50년을 훑는다. 국내외 미술계로부터 인정받은 작가들이 총출동한 ‘올스타전’이다. 지난 50년간 해외 비엔날레에 진출했던 작가 48명의 작품 109점을 모았다. 김창열의 1965년작 ‘제사’와 이건용의 1979년작 ‘달팽이 걸음’처럼 과거 작품을 그대로 내놓은 경우도 있고, 전수천의 ‘시간여행’처럼 이번 전시를 위해 기존 작품을 새롭게 재구성한 것도 있다. 미술작품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이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을 이해하고 다양한 작품을 감상하기 좋은 전시다. 남구 부산문화회관 전시실에서 열린다.
이처럼 뚜렷한 주제 하에 선보인 특별전에 비해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본 전시는 다소 밋밋한 느낌이다. ‘세상 속에 거주하기’라는 대주제로 7개의 전시가 열린다. 지나치게 범위가 넓어 어울리지 않는 작품들이 뒤섞인 것처럼 보인다는 지적도 있다.
그 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작품은 치하루 시오타의 ‘집적-방향을 찾아서’다. 흔들리는 거대한 여행 가방을 천장에 수없이 매달아 여러 나라를 떠돌며 형성된 작가 개인의 복잡한 정체성을 표현했다. 어두운 숲 속을 조용히 움직이는 영상과 공감각적 음향으로 구성된 다비드 클레르부트의 ‘여행’은 감상자가 마치 실제 숲 속을 걷는 듯한 착각 속에 빠지게 한다.
2000년부터 시작한 부산비엔날레는 올해로 8회째를 맞았다. 11월 22일까지 30개국에서 온 161팀의 작가들이 작품을 전시한다.
한편, 이번 부산비엔날레는 개최에 앞서 전시감독 선정이 불공정하다는 논란이 불거져 부산 미술계와 오광수 전 운영위원장이 갈등을 빚기도 했다. 올해 5월 부산문화연대 소속 작가 200명이 비엔날레 보이콧을 선언하며 오 전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했고 6월 오 전 위원장이 사퇴하기에 이르렀다. 전시감독의 출신지인 프랑스 작가들의 작품이 본 전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 같은 논란에 올리비에 케플렝 전시감독은 “부산에 오기 전 있었던 행정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며 “부산의 미술인들을 만나 마음을 돌리려 했고 몇몇 작가들은 참여했다”고 밝혔다.
보이콧을 선언한 작가들 중 일부는 27일 부산 중구 일대에서 개막하는 대안적 예술행사 ‘무빙트리엔날레-메이드 인 부산’을 통해 작품을 전시할 예정이다.
부산=인현우기자 inhy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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