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생겼다. 키도 작다. 노숙자 얼굴이 떠오를 정도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그룹의 창업자인 마윈(馬雲) 회장 이야기다. 그러나 빈 주먹 하나로 출발한 그는 20여년 만에 아무도 넘볼 수 없는 자신의 인터넷 제국을 세웠다. 나아가 이를 미 증시 사상 최대 규모 기업 공개(IPO)라는 기록을 세우며 상장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는 어떻게 이러한 신화를 만들 수 있었을까.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안다지만 1964년 시후(西湖)로 유명한 중국 저장(浙江)성 항저우(杭州)에서 태어난 마 회장의 어린 시절은 특별할 게 없었다. 공부를 잘 한 것도 아니었다. 대학입학시험에선 두 번이나 떨어졌다. 삼수 끝에 84년 겨우 들어간 게 항저우사범학교다. 어렵게 입학한 곳이니 열심히 배웠다. 88년 영어과를 졸업한 뒤 곧바로 영어 강사를 할 수 있었다. 명성이 쌓이며 번역을 맡기는 사람도 많았다.
그는 92년 번역사무실을 차렸다. 그러나 첫 달 수입은 불과 700위안(12만원). 사무실 월 임대료가 2,000위안이었으니 타산이 안 맞았다. 꽃도 팔고 선물용품 등도 팔며 94년 겨우 수지를 맞췄다. 한숨을 돌린 뒤 95년 초 미국 출장길에 처음 접한 인터넷은 그의 인생을 완전히 다른 길로 돌려 놨다. 95년 4월 그는 아내, 친구와 함께 2만위안(340만원)으로 기업들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어주는 회사를 차렸다. 이를 통해 그는 3년도 안 돼 500만위안(8억5,000만원)을 벌 수 있었다. 97년 베이징(北京)으로 입성했고, 대외경제무역부와 함께 ‘인터넷 중국상품교역시장’ 등을 만들었다.
이런 과정에서 전자상거래에 대한 눈을 뜬 그는 99년 동료 17명과 함께 다시 항저우로 돌아와 50만위안(8,500만원)으로 알리바바를 창업했다. 인터넷이 공평한 경쟁 환경을 만들 수 있고 이를 통해 작은 기업들도 전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는 게 알리바바 출범 당시 성원들의 창업 동기였다. 2000년엔 2,500만달러 투자를 받는 데도 성공했다.
마윈은 이를 바탕으로 국제적인 인재들을 끌어 모으는 데 힘을 기울였다. 그는 무엇보다 알리바바가 중국 기업 그 중에서도 중소기업들이 세계에 도전할 수 있는 무대가 돼야 한다는 확신이 있었다. 이를 위해 하나 둘 문을 연 사이트가 바로 인터넷 쇼핑몰 타오바오왕(淘寶網ㆍtaobao.com)과 톈마오(天猫ㆍtmall.com) 등이다. 전자상거래가 늘며 결제 시스템이 필요했고 그래서 만든 게 즈푸바오(支付寶ㆍalipay.com)다. 이 업체들은 중국 전체 인터넷 쇼핑몰 시장의 70%, 결제 시장의 80% 안팎을 장악하고 있다. 알리바바그룹의 2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6% 늘어난 158억위안(2조7,000억원), 영업이익은 26% 증가한 68억위안(1조1,500억원)으로 집계되고 있다.
알리바바그룹 홈페이지는 지금도 자신들의 사명을 ‘천하에 어려운 사업이 없게 만드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궁극에는 알리바바에서 만나고 알리바바에서 일하며 알리바바에서 생활하는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바람이다. 마 회장은 평소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돈을 벌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을 부유하게 만들면 된다. 가난한 이들도 모두 부자가 되고 싶어한다. 5달러 가진 사람에게 50달러를 갖게 만든 뒤 그에게서 2달러를 버는 사람이 좋은 사업가다”고 말한다. 그가 순자산 219억달러의 중국 최고의 부호가 된 비결은 남들을 먼저 부자로 만드는 것이었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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