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 분비 많은 청소년기 화장, 여드름ㆍ피부염 부작용 일으켜
유해 성분 색조화장품 오래 쓰면 30~40대 피부 손상 위험 초래
성인-청소년 화장품 경계 모호, 업체들 무분별한 마케팅도 문제
초등학교 3학년 예인이(10)는 기분이 좋다. 영어학원 레벨테스트를 통과해 할아버지에게 용돈을 두둑하게 받았기 때문이다. 용돈을 챙긴 예인이는 친구들과 함께 화장품 브랜드숍에서 립틴트, 비비크림 등을 구입했다. 아이브로우까지 사고 싶었지만 엄마 잔소리가 듣기 싫어 그만뒀다. 쇼핑을 마친 예인이는 방문을 굳게 닫고 친구들과 화장놀이 삼매경에 빠졌다. 휴대폰으로 화장한 모습을 촬영한 예인이는 다시 친구들과 함께 피아노학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중1 여학생 41.1%, 색조화장품 사용
10대 여학생들의 화장품 사용이 늘지만 사실상 방치되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대한화장품학회지에 게재된 ‘청소년들의 화장품 사용실태 및 구매행동에 관한 연구’논문(주 저자 장선미, 김주덕)에 따르면 중학교 1학년 여학생의 82.2%가 기초화장품을 사용했고, 메이크업 화장(색조화장)품을 사용한 학생도 41.1%에 달했다. 이들 여학생의 77%는 초등학교 때부터 기초화장을 시작했고, 초등학교 때 메이크업 화장을 처음 한 여학생도 43%에 이렀다. 화장을 시작한 나이대가 급속히 빨라진 것이다.
10대 여학생들은 어떤 화장품을 선호할까. 국내 모 화장품업체 조사결과에 따르면 기초화장품에서는 토너(미스트)가 38% 매출로 1위를, 28.6%를 기록한 에멀전이 2위를 차지했다. 메이크업 화장품에서는 네일제품이 가장 많이 팔렸는데 71.6%를 차지한 네일컬러가 1위를 기록했다. 가장 가파른 성장을 기록한 제품은 립틴트. 2011년 26.4%에 불과했던 립틴트 제품은 올해 41.9%의 매출을 기록했다. 페이스군에서는 파우더팩트(23.9%)와 비비크림(17.2%)이 꾸준한 판매고를 보이고 있었다.
어린 나이 화장, 내분비교란, 알레르기 등 부작용↑
여학생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화장을 시작하는 것과 관련 피부과 전문의들은 이구동성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서대헌 서울대병원 피부과 교수는 “성인과 달리 청소년의 피부는 피지분비가 많아 화장을 하는 것이 좋지 않다”며 “어린 나이부터 화학물질로 이뤄진 화장품을 바르면 피부를 자극해 피부손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서 교수는 “화장은 고교생이 되기 전까지 하지 말아야 한다”며 “어릴 때부터 화장하면 30~40대 피부손상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최재은 고려대의료원 안암병원 피부과 교수는 “청소년기에 화장을 하면 피지가 분비되지 않아 모공이 막혀 여드름질환이 있을 경우 상태가 악화할 수 있다”며 “특히 화장품에는 방부제, 향료 등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성분이 있어 장기간 화장품을 사용하면 접촉성피부염이 생길 수 있어 유의해야 한다”고 했다. 최 교수는 또 “화장자체도 문제지만 파우더 같은 화장품 관리에 서툴러 세균으로 인한 피부트러블이 생기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변지연 이대목동병원 피부과 교수는 화장품에 함유된 유해성분이 피부를 손상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변 교수는 “화장품에는 여러 가지 화학성분이 들어있는데 이들 성분은 내분비교란, 발암, 알레르기 등을 유발할 수 있다”며 “색조화장품은 이들 유해성분과 함께 니켈 등 중금속이 함유돼 알레르기, 피부염을 일으킬 수 있어 청소년들의 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변 교수는 “최근에는 화장품에 어떤 성분이 들어 있고 유해한 성분이 무엇인지 손쉽게 알 수 있는 만큼 자신의 피부에 맞는 화장품을 선택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10대 대상 화장품 알레르기 유발성분 포함 ‘충격’
실제로 최근 여성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는 화장품 성분분석 서비스 ‘화해(화장품을 해석하다)’ 애플리케이션에서 모 화장품업체 ‘B'브랜드 10대 전용 비비크림 성분을 살펴보니 시트로넬올, 리모넨, 리날룰, 하이드록시이소핵실3, 부틸페닐메칠프로피오날, 향료 등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고시한 알레르기 유발성분이 포함돼 있었다. 특히 향료는 두통, 색소침착, 가려움증, 발진 등을 유발할 수 있다고 적시돼 있었다.
문제는 10대 여학생들이 화장품에 함유된 유해성분을 가릴 수 있는 판단능력이 떨어진다는 점. 서대헌 교수는 “어린 나이에 화장을 하게 됐다면 화장을 하는 방법, 화장을 지우는 방법 등 화장 전반에 대한 교육을 부모 또는 성인이 된 형제에게 교육을 받고 화장을 하는 것이 화장으로 인한 문제를 최소화 시키는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화장으로 인한 피부손상을 예방하는 방법은 뭘까. 변지연 교수는 “너무 많은 제품을 다량으로 사용하면 알레르기유발은 물론 민감성피부가 될 수 있어 꼭 필요한 제품만 선택해 사용해야 한다”며 “너무 입자가 곱고 기름진 화장품은 여드름질환을 악화시킬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변 교수는 “화장품을 잘못 사용해 여드름질환이 악화돼 병원을 찾는 여학생이 많다”고 전했다. 최재은 교수는 “보습제, 세안제, 자외선크림 등만 발라도 충분하다”며 “그래도 화장을 하고 싶다면 비비크림을 가볍게 바르고 클렌징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했다. 서대현 교수는 “화장을 오래하면 할수록 피부에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며 “화장을 하고 있는 시간을 최대한 짧게 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했다.
“10대 대상 제품 없다”며 매장선 호객행위
중저가 제품으로 10대 여학생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는 화장품업체의 마케팅도 문제다. 국내 대표 중저가 화장품브랜드 관계자는 “매출비중이 미비해 10대를 겨냥한 별도의 메이크업 제품이 없다”고 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서울 종로, 강남, 대치동 등 매장을 방문해 10대 여학생들의 찾는 화장품을 소개해달라고 하자 주저 없이 색조화장품이 가득한 코너를 안내했다.
매장에서 만난 김정민(12)양은 “친구들과 함께 투명 아이라이너를 구입하기 위해 왔다”며 “매장에 10대 전용 코너가 없지만 원하는 것을 사는데 문제가 없다”고 했다. 화장품에 피부를 손상할 수 있는 화장품 성분이 들어있는 것을 인지하고 있냐고 묻자 김 양은 “잘 모른다”며 “친구들이 많이 쓰는 제품을 구입 한다”고 답했다. 또 화장을 왜 하느냐고 묻자 김 양은 “재미로 화장을 시작했다”며 “친구들끼리 모여 화장을 하면 재미있고 예뻐지는 같아 좋지만 화장품 구입에 필요한 비용이 만만치 않은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화장품업체들이 청소년 화장품과 성인화장품의 경계가 모호한 현실을 교묘히 이용해 이익만 챙기고 있는 것이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학교에서 단정한 용의복장과 학생다움을 강조하며 화장품 사용을 자제하고 있지만 솔직히 화장품은 10대 여학생들에게 필수품으로 자리매김한지 오래됐다”며 “브랜드숍, 헬스&뷰티숍 증가로 아이들이 화장품을 접하는 경로가 쉽고 다양해져 통제도 어려운 만큼 차라리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화장법을 가르쳐 화장의 위험성과 중독성을 인지시키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했다. 또 그는 “맞벌이부부 증가로 아이들이 학원에서 생활하면서 친구들과 함께 화장품을 구입해 몰래 화장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아토피, 여드름질환을 악화시킬 수 있는 성분을 함유한 화장품을 사용하는지 부모가 점검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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