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부지 낙찰 후 긴급회의 3.3㎡당 4억4000만원 선
일각에선 승자의 저주 우려 "미래 가치로 충분" 의견도
18일 오후 서울 양재동 현대차 사옥은 강남 마지막 금싸라기 땅을 낙찰 받은 후의 기쁨보다는 긴장감이 팽배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 인수전 실무를 맡았던 관계자들이 비상 소집된 것. 재계 소식통은 “현대차가 한전부지 인수 금액으로 써낸 10조5,000억원은 ‘단군 이래 최대 건설’이라 불렸던 용산 역세권 개발 때 삼성물산 컨소시엄이 써냈던 8조원 보다 더 많은 액수”라며 “경쟁 상대인 삼성전자 입찰 움직임에 대한 파악과 대응에 잘못이 있었는지 따져보기 위해 긴급 회의가 소집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사실 이날 오전 발표직전까지 양재동 현대차 사옥과 서초동 삼성 사옥은 모두 저마다 자신들이 인수할 것을 낙관하는 분위기였다. 이는 양사 모두 감정가인 3조3,346억원 보다 훨씬 높은 금액을 써냈을 것이란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낙찰을 받기 위해서는 감정가가 아니라 한전이 비공개로 적어낸 예정가보다 높은 금액을 써야 하는데, 한전이 예정가를 높게 정할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양사 모두 최소 5조원 이상을 써냈을 것이란 추측이 많았다.
오전 10시 30분께 현대차가 한전 부지의 새 주인으로 결정됐다. 하지만 낙찰 직후 한전의 예정가가 감정가와 동일했으며, 낙찰가격이 무려 시중 예상보다 2배 이상 높은 10조원을 넘는 것으로 발표되면서 낙찰 액수가 적절했는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관련기사 ▶ 현대차가 써 낸 10조, 그 돈으로 뭘 할 수 있을까?)
10조5,000억원이면 3.3㎡(평) 당 4억3,879만원에 달한다. 이는 2011년 삼성생명이 한전 바로 옆에 위치한 한국감정원부지를 3.3㎡(평) 당 6,993만원에 구입했던 것과 비교하면 6배가 넘는 금액이다. 박원갑 국민은행 수석부동산 전문위원은 “투자보다는 실수요 개념으로 접근하다 보니 시장 논리에는 맞지 않는 큰 돈을 베팅한 것으로 보인다”며 “입찰가를 4조1,000억원 정도로 봤는데 초고층 건물 완공후 건물주가 부실에 빠지는 ‘승자의 저주’가 현실화하지 않을지 우려되는 것도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현대차 주가도 이런 우려가 반영됐다. 낙찰 소식이 전해진 직후부터 하락행진이 이어져 전일보다 9.17% 내린 19만8,000원으로 장을 마쳤다. 현대차는 이날 장중 한때 25만7,000원까지 떨어지며 52주 신저가를 기록했다. 현대차의 이날 하락률은 2011년 8월 19일 10.97% 이후 3년 만에 가장 큰 폭이다. 현대차와 함께 컨소시엄을 꾸린 기아차와 현대모비스의 주가도 각각 7.80%, 7.89% 급락했다. 현대모비스 주가도 장중 52주 최저가 밑까지 내려갔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10조원은 현대차의 6년치 연구개발비에 해당한다”며 “이 돈을 신차 개발이나 친환경 기술 개발 등에 썼다면 더 좋았지 않겠느냐는 아쉬움이 크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이미 서초동에 사옥을 마련한 삼성과 달리 현대차는 한전부지가 꼭 필요한 상황이다. 게다가 2007년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 입찰 때 당시 삼성물산 컨소시엄이 감정가(3조8,000억원)의 2배가 넘는 8조원을 써내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물러나야 했던 아픈 기억도 남아 있다. 통합 사옥터가 절실한 현대차로서는 애초부터 감정가가 큰 의미가 없었던 셈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자금여력으로 볼 때 결코 무리한 투자가 아니며, 개발 후 되파는 목적이 아니라 현대차의 미래를 담을 사옥을 지으려는 투자이기 때문에 ‘승자의 저주’ 운운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부지 매입 비용을 뺀 나머지 건립비용 등은 30여 개 입주 예정 계열사가 8년 동안 순차적으로 분산 투자할 예정이어서 각 사별로 부담도 크지 않다”면서 “지난 10년 동안 강남지역 부동산 가격 상승률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등 외부 변수에도 연평균 9%에 달했기 때문에 10∼20년 뒤를 감안 할 때 미래가치는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현대차 측은 또 지금까지 그룹 통합 사옥이 없어서 계열사들이 부담하는 임대료가 연간 2,400억원 이상이기 때문에 통합 사옥이 생기면 연리 3%를 적용했을 때 약 8조원의 재산 가치가 발생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정몽구 회장이 지금까지 주변의 반대와 우려를 무릅쓰고 밀어붙였던 기아차나 현대건설 인수처럼 조 단위 대형 투자 중 성공했던 사례들을 들며 이번 투자도 당장의 비용으로 평가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한편 입찰에서 고배를 마신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아쉽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한전 부지 인수에 성공할 경우, 최첨단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인프라와 대규모 상업시설 및 문화공간이 결합된 ‘ICT 허브’ 개발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탄을 아낀 만큼 신성장동력 발굴, 육성이나 스마트폰 및 반도체 등 주력 분야에서 차세대 제품 개발에 힘을 쏟을 수 있는 여력이 생겼다는 점에서 차라리 잘된 것 아니냐는 반응도 있다. 이날 주가도 전날보다 1.31% 떨어지긴 했지만 ‘승자’인 현대차그룹 주에 비하면 ‘선방’ 했다는 평가다.
현대차그룹은 26일까지 한전과 본 계약을 맺을 계획인데, 매입금액은 계약 맺은 날부터 1년 안에 4개월 단위로 3회 나눠서 낸다.
허재경기자 ricky@hk.co.kr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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