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개국 작가 250여명 8개 기획전
사진예술 다양한 관점·기법 보여 줘
사진예술은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발달해 왔다. 변방으로 밀려난 비서구권 작가들의 작품은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다. 하지만 올해 대구사진비엔날레는 주전시에 유럽과 미국 작가들이 없다. 주전시에 참여한 18개국 32명 가운데 1명만 빼고 전부 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중남미 작가들이다. 주전시 큐레이터인 스페인 사진 기획자 겸 이론가 알레한드로 카스테요테(55)는 “서구 사진예술이 서구 우월적 관점에서 기록하고 해석해 온 역사에서 벗어나 비서구권 스스로 내는 목소리를 듣고자 일부러 그랬다”고 설명하면서 이를 ‘역사 다시 쓰기’라고 요약했다.
대구사진비엔날레는 2년마다 하는 국내 최대 사진 축제로 사진예술의 현재와 미래를 만나는 자리다. 12일 개막한 올해 행사는 주전시를 비롯한 8개 기획전에 31개국 250여 명의 작가가 참여해 동시대 사진예술의 다양한 관점과 표현 기법을 보여준다.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고 있는 주전시는 아마존의 밤으로 시작한다. 컴컴한 방에 길게 펼친 길이 30m, 폭 1.1m의 대형 감광지 3개에 아마존 정글이 담겼다. 페루 작가 로베르토 후아르카야의 이 작품 ‘아마조그라마스’는 카메라와 렌즈 없이 야간에 플래시, 달빛, 번갯불이 감광지에 바로 찍은 사진이다. 작가가 거의 개입하지 않고 자연이 몸소 빛으로 그려낸 스펙터클이 자연의 신비와 위대함을 웅변한다.
서구 렌즈에 갇히기를 거부하는 비서구 작가들의 대응은 각 지역의 역사와 현실, 정체성을 다루는 작품에서 드러난다. 사모아 혼혈 작가인 시게유키 키하라는 사모아에서 제3의 성을 가리키는 ‘파파피네’로 분한 자화상 시리즈로 서양의 이분법적 성 개념에 도전한다. 브라질 작가 안젤리카 다스의 ‘휴마네’는 여러 인종의 다양한 피부색을 수집한 색채 목록이다. 각 모델의 피부에서 추출한 색으로 배경을 입힌 초상 사진에 색채 분류 번호를 붙인 이 작품은 인종과 피부색으로 사람을 분류하는 고정관념을 부정한다.
이란 작가 아자데 아크흐라기는 이란 현대사의 공식 기록에서 누락된 어두운 장면들을 영화처럼 연출한 살인사건 사진으로 환기시킨다. 정치 사건과 혁명, 현대 도시를 다룬 남미 작가들의 작품과, 아프리카의 오늘을 키치적 장면으로 연출하거나 전통문화의 힘으로 뛰어넘으려는 아프리카 작가들의 작품도 역사를 다시 쓰려는 패러디로 보인다.
가족앨범을 끌어들인 작품은 기억으로서 사진의 존재 의미를 새삼 부각시킨다. 2011년 쓰나미가 일본 해안을 덮친 뒤 시작된 ‘추억 구조 프로젝트’의 사진들이 대표적인 예다. 건물 잔해에서 찾아낸 심하게 훼손된 사진들이 얼룩덜룩한 타일처럼 전시장 벽을 덮었다.
이번 대구사진비엔날레는 현대사진의 다양한 표현 방법을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전통적인 기법의 사진과 나란히 쌀종이나 한지, 염직 천에 인화한 사진, 사진과 회화의 경계에 선 사진 콜라주, 네온사인이나 각종 오브제를 결합한 사진 설치작품과 비디오아트 등 실험적인 기법이 공존해 보는 재미가 있다.
주전시가 열리고 있는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동시 진행 중인 ‘이탈리아 현대사진전’은 바스코 아스콜리니, 비토리아 두소니, 다비데 브라만테 세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또다른 기획전 ‘전쟁 속의 여성’은 대구예술발전소에서 볼 수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스라엘의 공습에 파괴된 가자지구, 종군 여기자가 찍은 베트남전, 콩고 내전에 짓밟힌 여성 등을 여성의 눈으로, 여성의 입장에서 기록하고 고발하는 사진들을 모았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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