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마를 했다. 중화를 마치고 머리까지 감고 나니 밤 9시. 미용사가 드라이어를 들며 말을 걸었다. “웨이브 괜찮으세요?”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좀 피곤한 상태였다. 특별히 망치지는 않은 듯 하니 뭐 그럭저럭 파마머리겠지. 머리가 반쯤 마르자 미용사는 롤빗으로 뿌리를 세우고 드라이어를 바싹 들이댔다. 요컨대 마지막 단계인 스타일링. 사양을 표했다. 아침부터 여기저기 쏘다닌 후 파마약 냄새에 코를 맡긴 터라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어깨를 잡았다. “그래도요. 잠깐이면 돼요.” 나는 퀭한 눈으로 거울 속에서 봉긋봉긋 부푸는 머리를 지켜보았다. 젠장. 야밤에 무슨 꽃단장이람. 잠시 후 뜨거운 바람이 멎었다. 그녀의 손에는 이제 스프레이가 들려 있었다. 아뇨, 아뇨, 아무것도 바르지 말라고 내가 머리를 감싸자, 멈칫하며 스프레이를 왁스로 바꿔든 그녀의 얼굴에는 서운함이 비쳤다. “그래도요. 어떻게 정돈하는지는 알아야죠.” 그녀는 손바닥 가득 왁스를 발라 둥글게 부푼 머리를 정성껏 매만졌다. 나는 성가시기 짝이 없었는데, 그러면서도 끝내 뿌리치지 못한 이유는 무얼까. 미용사에게는 제 손이 닿은 모든 머리가 ‘작품’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기 때문인 것 같다. 누구나 자기 작품의 완성 형태를 감상할 권리쯤은 있어야 하겠지. 또 자랑해 보이고 흐뭇해 할 기회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녀가 손거울을 들고 머리의 뒷모양을 보여주었다. “예쁘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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