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복면의 영웅이 돌아왔다. 뮤지컬 ‘조로’가 지난달 27일 서울 충무아트홀 대극장에서 개막했다. 2011년 국내 초연 이후 약 3년 만이다. 다음달 26일까지 두 달간 공연을 이어가는 ‘조로’는 개막 전부터 가수 휘성의 뮤지컬 데뷔작으로 팬들의 관심을 모았다.
올해 뮤지컬 ‘조로’의 가장 큰 특징은 극의 내용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점이다. 이번 무대는 왕용범 연출과 이성준 음악감독이 다시 쓴 ‘리부트(전작의 연속성을 거부하고 이야기를 처음부터 새롭게 만드는 것)’ 작품이다. 미국 극작가 존스턴 맥걸리의 단편소설 ‘카피스트라노의 저주’ 속 등장인물과 영웅서사는 차용했지만, 주인공 디에고가 2대 조로로 성장해나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췄다.
이번 리부트 버전은 결과적으로 득보다 실이 많은 듯하다. 우선 스토리의 개연성이 빈약해졌다. 극 중 조로의 라이벌로 등장하는 라몬은 극 초반부터 캘리포니아 시민에게 과도한 세금을 물리는 악역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악행의 근거가 부족하다. 1세대 조로에게 부친을 잃었다고는 하지만 이미 1세대 조로가 자취를 감춘 지 20년이 지난 시기라는 점에서 라몬의 악행을 뒷받침할 충분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 그렇다고 영화 ‘배트맨 다크나이트’ 속 조커처럼 자신만의 철학을 가진 악역도 아니다. 때문에 관객은 이유를 알 수 없는 라몬의 악행을 보며 극 초반을 버텨내야 한다.
악행의 근거가 부족하다 보니 극의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무리한 선악 구도를 남발하는 점도 문제다. 예를 들어 조로와 라몬에게 각각 절대선과 절대악의 이미지를 덧씌우는 식이다. 2000년대 이후 ‘오페라의 유령’, ‘위키드’ 등을 통해 선악이 뒤엉킨 입체적인 캐릭터를 봐온 관객들에게 ‘조로’ 속 명확한 선악 구도는 촌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배우들의 동선이나 검술 대결도 기대에 크게 못 미친다. 휘성이 연기한 조로는 그가 칼을 휘두르기 전에 이미 앙상블의 칼이 방어 위치에 자리잡고 있는 등 합이 맞지 않는다. 뮤지컬 ‘조로’의 가장 큰 볼거리인 아크로바틱 역시 휘성이 아닌 대역이 등장했을 때 잠깐 선보이는 게 고작이다. 마케팅을 위해 조로 역을 네 명(휘성, 김우형, 키, 양요섭)이나 선택한 탓에 앙상블과의 연습 시간이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회전 무대를 통해 시장의 집, 집시촌, 광산 등으로 순식간에 배경이 바뀌는 장면은 탁월하다. 영화에 비해 공간 제약이 클 수밖에 없는 뮤지컬의 한계를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지 잘 보여준 무대 활용이다. 또 단편적인 등장인물들의 나열 속에서 캘리포니아 시장 돈 알레한드로의 입체적인 캐릭터는 빛을 발한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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