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우승 불구 못 밟은 유일 고지
세계 도전 10년 만에 꿈 이뤄
이젠 우승 아닌 완등 목표 새 도전
‘암벽 여제’ 김자인(26ㆍ올댓스포츠)이 마지막 남은 고지를 점령했다. 늘 우승, 최강자, 1위라는 타이틀이 따라다녔던 그지만 유달리 불운이 계속됐던 세계선수권 리드(난이도가 가장 높은 인공암벽을 더 높이, 가장 빨리 오르는 경쟁) 부문에서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김자인은 15일 스페인 히혼에서 열린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 여자부 리드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세계랭킹 1위 김자인에게 이번 우승이 남다른 이유는 세계선수권 리드 우승이 좀처럼 올라설 수 없는 미완의 숙제로 남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김자인의 이력에 월드컵을 포함해 우승 타이틀은 빼곡하다. 하지만 미답지로 남아 있었던 것이 세계선수권 타이틀이었다. IFSC 세계선수권은 스포츠 클라이밍에서 최고의 권위와 최대 규모를 인정 받는 대회인 만큼 김자인의 욕심도 컸다. 여섯 번의 도전이 이어졌지만 세계선수권은 야속하게 정상을 내주지 않았다. 2012년 세계선수권에서는 종합우승을 했지만 리드 부문 결승에서 앙겔라 아이터(28ㆍ오스트리아)에게 우승을 넘겨줬다. 2009, 2011년에도 리드 부문에서 2위를 하며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적지 않은 김자인의 나이는 이번 우승을 더욱 값지게 만들었다. 올해 스물 여섯인 김자인은 2위 아낙 베르호벤(18ㆍ벨기에)보다 여덟 살이 더 많다. 10위권 내 선수들 중에 김자인보다 나이가 많은 선수는 마자 비드마르(28ㆍ슬로베니아)와 에브게냐 말라미드(27ㆍ러시아) 등 두 명뿐이다. 2004년 열여섯의 나이로 처음 세계대회에 출전한 후 꼭 10년만에 찾아온 선물이기에 남다르기도 하다.
리드가 ‘누가 더 높이’를 겨루는 종목인 만큼 김자인의 완등은 더 빛이 났다. 경쟁 선수였던 막달레나 뢰크(20ㆍ오스트리아)와 미나 마르코비치(26ㆍ슬로베니아)가 47+를 기록하면서 김자인은 48번째 홀드를 잡았을 때 이미 우승을 확정했다. 하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마지막 홀드까지 잡아내면서 우승과 완등을 모두 이뤄냈다. “언제나 목표는 우승이 아니라 완등”라는 평소의 신조를 이날 경기에서 여실히 보여줬다.
완등을 향한 노력이 우승으로 이어진 순간 김자인은 벅찬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마지막 홀드를 붙잡고 우승을 확인한 김자인은 승리의 세리머니를 펼치지 못한 채 로프를 타고 내려오면서 펑펑 눈물을 쏟았다. 늘 눈앞에서 놓쳤던 우승이었기에 더 간절했기 때문이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김자인은 “금메달을 너무 원했지만 그냥 대회를 즐기자고 욕심을 억눌러왔다”며 “그래도 좋은 성적을 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기쁘다”고 우승 소감을 전했다.
16일 귀국하는 김자인은 내달 1일 시작되는 아시아선수권에 출전한다. 다시 한번 ‘우승이 아닌 완등’을 목표로 훈련에 매진할 계획이다.
이현주기자 memor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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