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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도, 대우 망한 것도 김우중 때문이라니…"

입력
2014.09.1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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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 투자할 때나 상환할 때 외환보유액 안 건드렸다

옛 대우계열사들 지금 잘나가… 이름에 '대우' 왜 나뒀겠나

장병주 전 (주)대우 회장
장병주 전 (주)대우 회장

金 회장 세계경영에 매달리다 국내 사정·관료사회 잘 몰라

다들 숨겨 둔 비자금 얘기하지만 집까지 내놨는데 믿지 않아 답답

신장섭 교수
신장섭 교수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대우특별포럼에 참석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이자리에서 그는 "대우 해체가 합당했는지 명확히 밝혀지길 바란다"며 눈물을 보였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대우특별포럼에 참석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이자리에서 그는 "대우 해체가 합당했는지 명확히 밝혀지길 바란다"며 눈물을 보였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도대체 무엇이 억울하단 말인가. 김우중(78) 전 대우그룹 회장은 최근 나온 회고록 성격의 대담록 ‘김우중과의 대화_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를 통해 대우 해체의 이면과 자신의 심경을 솔직히 밝혔다. 이 책 출간을 계기로 일각에선 김 전 회장에 대한 재평가 바람이 불기도 했다. 김 전 회장은 지난달 26일 옛 대우그룹 임직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시간이 충분히 지났으니 잘못된 사실을 바로 잡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욕은 먹을 만큼 먹었으니 제대로 평가 받고 싶다는 설명이다.

김 전 회장과 대우에 대한 동정론이 일기 시작하자 비판여론 또한 비등해졌다. “반성을 해도 시원찮을 판에 너무 당당하지 않나” “대우 해체로 인한 피해자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는 게 우선 아닌가” “사면까지 받은 사람이 무슨 면목으로…”라며 못마땅해 하는 인사들도 적지 않았다. 실제로 김 전 회장의 최종 형량인 징역 8년6월에 추징금 17조9,253억원은 그가 저지른 과오가 결코 가볍지 않음을 보여준다.

김 전 회장의 최측근이자 대리인격인 장병주(69) 전 ㈜대우 회장을 한국일보 기자 4명이 만나 3시간 동안 속내를 들어봤다. ‘김우중과의 대화_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의 저자인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도 함께 했다. 장소는 서울역 부근 대우재단빌딩에 자리잡은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는 장 전 회장은 “회장님(김우중)은 몸이 불편해 언론 인터뷰가 힘든 상황”이라고 전했으며, 연구회 측 인사는 “장 전 회장의 입장이 회장님 생각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밝혔다.

_책이 많이 팔리는 것 같다.

신 교수 “대우를 잘아는 나이 든 사람들 보다 30,40대에서 많이 구입한다고 들었다. 고무적인 일이다. 언론에서 대우해체 논란만 주목해서 그렇지, 책에는 한국경제에 교훈이 될만한 내용이 실려 있다. ”

_언론은 김 회장과의 접촉을 수도 없이 시도했는데 대부분 실패했다. 김 회장과는 어떻게 만났나.

신 교수 “김우중 전 회장 측근으로부터 2010년 여름에 먼저 전화가 왔다. 대우해체의 빌미가 된 국제통화기금(IMF) 체제가 잘못됐다고 내가 계속 주장해온 터라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김 회장이 머무는 베트남 하노이로 올 생각이 있느냐고 물어 즉시 날아갔다. 이틀 동안 15시간 이야기하면서 교류가 시작됐다.”

_전두환 전대통령 추징금 이야기가 나오면서 김 회장이 납부하지 못한 추징금도 조명 받고 있다.

장 회장 “판결을 받았으니 부인하진 않겠다. (대법원 판결문을 보여주며) 하지만 판결문에도 개인적인 이득을 취한 바가 없다고 명시돼 있다. 전두환 추징금과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그 당시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징벌적으로 부과한 성격이 짙다고 본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라. 17조, 18조원이나 되는 돈을 개인이 어떻게 납부하나. (장 회장도 3조원 가까운 추징금을 부과 받았다.) 이 돈을 실제로 거두려고 추징하지는 않았을 거다.”

장 회장이 판결문을 근거로 과도한 추징금을 문제 삼았다. 하지만 법원은 같은 판결문을 통해 “이 사건은 전체 범행의 내용 및 규모에 있어 구체적으로 열거할 필요도 없이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 넘는 엄청난 것”이라며 김 전 회장을 엄하게 꾸짖었다.

_대우 해체의 직접 계기가 된 대우자동차의 경우 업계나 국민들 사이에서는 대체로 부실했고 1등차는 아니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장 회장 “대우차는 1997년에 3개 차종을 동시에 출시할 정도로 기술력이 탄탄했다. 유동성이 부족해 대우가 GM과 합작하자고 매달렸다는 게 정설인데 사실과 다르다. GM이 대우 공장을 둘러본 후 손을 잡아야겠다고 생각한 거다. 1997년부터 협상해서 98년 2월에 내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대우가 기술력이 없으면 GM이 왜 왔겠나.”

_한국GM의 세르지오 호샤 사장은 이 주장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장 회장 “완성차 기준으로 하면 옛 대우시절이나 지금이나 생산량이 똑같다. GM이 대우 모델로 중국 가서 재미보고 있지 않나. 대우차를 GM에 헐값으로 넘기는 바람에 대우가 해외에 장시간 투자해온 무형자산이 모두 날아갔다.”

_선단식, 문어발식 경영하다가 대우가 망한 것 아닌가.

장 회장 “ 회사가 커지다 보면 계열사끼리의 거래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특히 대기업 오너는 고급정보가 많고 대외접촉을 많이 한다. 그것을 바탕으로 비즈니스 판단을 했기 때문에 꼭 나쁘게 볼 것은 아니다. 또 대주주가 주식 보유하면서 배당 받는 방식으로 돈을 챙겼다면 잘못이지만 김 회장은 스스로 전문 경영인이라 생각하고 주식 가진 것도 없고 배당 받은 적도 없다.”

_그렇다면 대우가 왜 망한 건가.

장 회장 “외환위기가 발발한 것은 1997년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이 20억달러로 떨어진 것이 직접적 원인이다. 경제 관료들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하고 건방 떨며 환율관리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다. 대우의 방만경영을 원인으로 지목하는 건 지나치다. 대우가 투자하거나 상환할 때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을 건드린 적이 없다.”

장 회장과 신 교수는 대우 해체를 정부 탓으로만 돌렸는데, 김 전 회장이나 대우 경영진의 부실경영 책임은 특별히 언급하지 않았다.

_책에는 이헌재 전 금융감독위원장이나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에 대해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장 회장 “관료들 한 마디가 시장을 좌우한다. 그 사람들이 대우가 부실하다고 말하지 않았나. 대우가 정말 경영책임으로 부실해진 것인지 묻고 싶다. 대우는 정부 시나리오에 의해 사기를 당한 것이다. 기획해체설을 이야기 할 수밖에 없다.”

이 전 위원장은 회고록을 통해 “계열사나 자산 매각을 해야 살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대우는 구조조정보다는 정부 지원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며 대우 책임론을 제기했으며, 강 전 장관도 “당시 다른 재벌들은 구조조정을 열심히 했는데 대우만 소극적이었다. 기획해체설은 터무니없는 이야기”라며 불쾌한 감정을 감추지 않고 있다.

_대우가 IMF 때 정부나 금융권으로부터 특혜를 바랬던 것은 사실 아닌가.

장 회장 “대우가 정부에 금융지원을 요구했다고 하는데, 수출금융을 정상화하자고 제안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외환위기 이후 마비된 수출금융이 정상화 안되면 당시 대우자동차 부도나고 다 망하는 상황이었다. 대우만의 특혜를 바란 것이 아닌데도 정부는 유독 대우한테만 가혹하게 제한을 뒀다. 2000년대에 현대가 위험했을 때 회사채 신속인수 제도를 만들어서 정부에서 신속하게 인수해 줬다.”

이에 대해 강봉균 전 장관은 “금융권이 대우가 불안하다고 자체 판단해 돈을 빌려주지 않은 것”이라며 당시 수출금융을 대우에만 차별적으로 적용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의 대담록을 집필한 신장섭(왼쪽) 싱가포르국립대 교수와 김 전 회장의 최측근 장병주 전 대우 회장은 "대우 해체를 둘러싼 오해를 바로잡고 대우가 남긴 무형 자산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의 대담록을 집필한 신장섭(왼쪽) 싱가포르국립대 교수와 김 전 회장의 최측근 장병주 전 대우 회장은 "대우 해체를 둘러싼 오해를 바로잡고 대우가 남긴 무형 자산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_대우조선해양, 대우인터내셔널, 대우건설, 한국지엠, 대우전자, 대우증권 등 옛 대우그룹 계열사들이 현재도 비교적 잘 나간다. 건실했던 회사들이 김우중 회장의 경영 잘못으로 부실해졌다는 지적이 많다.

장 회장 “유동성이 부족했던 건 사실이니까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KDB대우증권, 동부대우전자, 대우인터내셔널에서 왜 ‘대우’ 브랜드를 안 뺀다고 보나. 대우 이름 안 쓰면 영업하기 곤란하다는 것이다. 대우 브랜드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큰 무형의 자산인가. ”

_대우가 어려움을 겪으면서 납품대금을 못 받고 대우에서 만든 김치냉장고를 납품대금으로 받은 협력업체도 많다. 김 회장이 이 부분에 대해 미안한 마음은 없는 건가.

장 회장 “왜 미안한 마음이 없겠나. 납품업체나 소액 채권자한테 특히 그렇다. 임직원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다. 변명은 아니지만 결국은 대우가 망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대우가 망한 것이 김우중 회장의 탐욕과 황제경영으로 망했다면 책임을 져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_노무현 전 대통령이 예상 밖으로 김 회장을 특별사면 해줬는데 특별한 인연이 있나.

장 회장 “특별한 인연은 없다. 어떻게 보면 악연이다. 1987년 대우조선 분규 때 노 전 대통령이 감방까지 가지 않았나.”

_김 회장이 특별사면 받기 위해 로비 한 것은 없나.

장 회장 “회장님 주위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정부 쪽에 전했을 수는 있다. 사면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놀랐다. 가능성으로 본다면 기업인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 때 사면 받을 것으로 기대했다."

_김대중 전 대통령(DJ)과 처음에는 사이가 좋았지만 결국은 어정쩡한 상태로 헤어지지 않았나. 그 뒤로 두 사람이 접촉한 적은 없나.

신 교수 “해외 출국 이후로는 없었다. 부실기업인으로 낙인 찍히다 보니 만남 자체를 봉쇄 당했다.”

_김 회장은 DJ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이 남아있지 않나.

신 교수 “오히려 DJ를 굉장히 옹호했다. 관료들이 대통령의 생각을 바꾸려 했던 것으로 이해하더라.”

_김 회장이 숨겨둔 재산이나 비자금 정말 없나. 없다고 말해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장 회장 “1999년에 1조3,000억 사재출연 하고 방배동 집까지 내놓았다. 재산이 없다고 해도 믿지 않는데 답답하다. 아들딸 재산까지 뒤지고 하는데 문제될 거 없을 거다.”

_국내든 해외든 김 회장이 통치권자를 비롯한 높은 분들과 자주 접하다 보니 정치자금 제공 등 검은 거래가 많았을 것이란 인식이 있다. 공소시효도 끝났는데 고백할 일 없나.

장 회장 “비자금 있다는 것은 잘 모르겠다. 물론 정권에서 기업들에 배분해 통치자금 같은 것을 걷었을 때 그런 돈은 갖다 줬을 수 있다. 하지만 비즈니스를 위해서 뇌물 주지는 않았다. 신흥시장 개척할 때도 마찬가지다. 대우는 주로 정부 부탁으로 부실기업을 인수했기 때문에 이권이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김 전 회장은 최기선 전 인천시장에게 뇌물 3억원, 송영길ㆍ이재명 전 의원에게 불법정치자금으로 각각 1억원과 3억원을 제공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_김 회장이 가장 후회하는 부분은 무엇이라고 말하던가.

장 회장 “세계경영에 너무 매달리면서 주로 해외에 머물렀기 때문에 국내사정을 잘 몰랐다. 때문에 대통령만 이해시키면 관료조직은 그대로 따르던 개발독재 시절처럼 생각해, 변화하는 관료사회에 대한 감각이 다소 부족했던 측면도 있었다. 회장님이 젊을 때 사업을 시작해서 나이든 사람하고는 상대를 잘 하지만 밑에 있는 사람하고는 대화를 잘 못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맡지 않고 그룹 일에만 매진했다면 해체는 피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_대우가 남긴 가장 큰 자산은 무엇인가

장 회장 “정신적인 면을 평가하고 싶다. 기업가 정신이나 도전, 창조, 그리고 희생 정신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다음 세대를 위해 현재 세대가 희생을 해야 한다는 게 지론이었다. 베트남에서 글로벌 YBM을 운영하는 것도 한국의 능력 있는 청년들이 마케팅 능력을 키워 대기업과 대등한 경쟁을 하도록 돕기 위함이다.”

_김 회장은 한국에 오면 어디서 머무나.

장 회장 “방배동 빌라에 산다. 딸이 세를 낸 집이다. 대우그룹 회장까지 지낸 사람인데 이렇게 산다고 하면 이해를 못할 수도 있는데 실제로 그렇다."

_김 회장의 큰 아들(고인)이 영화배우 이병헌을 닮아서 양아들 삼았다는 이야기는 사실인가.

장 회장 “그럴 리가 있나. 닮긴 닮았더라. 사람들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한 것뿐이다. 아들이 두 명이나 있는데 무슨 양아들인가.” 김 회장은 슬하에 3남 1녀가 있었지만, 장남이 일찍 사망했다.

_김 회장이 높게 평가하는 기업인이 있나.

장 회장 “연초에 빠짐없이 세배하던 기업인이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과 경방그룹 김용완 회장이었다. 이병철 회장은 김 회장을 아들처럼 아꼈다고 한다. 서로 아이디어를 주고받는 사이였다. 현대그룹과는 경쟁하는 분야가 많다 보니 많이 부딪쳤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김창훈기자 chkim@hk.co.kr

박나연 인턴기자(경희대 호텔관광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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