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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교육해도 대학이 문·이과 나눠 뽑으면 '말짱 도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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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교육해도 대학이 문·이과 나눠 뽑으면 '말짱 도루묵'

입력
2014.09.1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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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만 합친 융합과학 실패 전례, 고민 없이 바뀌는 교육과정 불신도

12일 오후 청주시 한국교원대학교 교원문화관에서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총론 주요사항 공청회'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 노조원들이 통합형 교육과정을 반대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12일 오후 청주시 한국교원대학교 교원문화관에서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총론 주요사항 공청회'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 노조원들이 통합형 교육과정을 반대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교육부가 2018년부터 적용키로 한 ‘문ㆍ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개정안’에 대한 논쟁이 본격화했다. 융합인재를 키우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교육과정에 절대적 영향을 미칠 대입제도에 대한 방침은 미뤄놓은데다, 도입이 4년도 남지 않아 일선 학교의 역량ㆍ준비 미비로 ‘빚 좋은 개살구’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12일 충북 청주 교원대에서 열린 ‘문ㆍ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총론 공청회’에서 참석자들은 “의견 수렴 없는 성급한 개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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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ㆍ대입제도 언급 없어 혼선

1963년 제2차 교육과정 이후 50년 넘게 계속된 고교 문ㆍ이과 칸막이를 없앨 열쇠는 대학에게 있다. 현재 초등학교 6학년이 고1이 되는 2018년부터 문ㆍ이과 통합교육을 한다고 해도 이들이 수능을 보는 2021학년도 입시에서 대학이 계열에 따라 선택과목에 가중치를 두는 식으로 사실상 문ㆍ이과를 갈라 신입생을 선발하면 사실상 통합 교육과정이 제대로 운영되기 힘들다. 전문가들은 대학이 면접 등으로 인문ㆍ자연계 학과에 맞는 인재를 추려낼 수 있는 만큼 “대입제도 개선이 문ㆍ이과 융합 교육의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교육부는 개정안을 발표하면서 대입제도 개편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문ㆍ이과 모두 국어ㆍ영어ㆍ수학ㆍ통합사회ㆍ통합과학ㆍ한국사 등 6개 과목을 수능 출제과목으로 하겠다고 했을 뿐 심화과정인 선택과목을 어떻게 반영할지는 논의된 게 없다. 대입 3년 예고제에 따라 2017년 말에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비상에듀 이치호 입시전략연구실장은 “공통과목으로만 수능을 치른다면 학력 저하를 우려한 대학이 심층 면접을 강화할 수 있고, 선택과목까지 볼 경우 학과에 맞는 선택과목을 이수한 수험생에게 가산점을 주는 식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이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문ㆍ이과 통합교육은 허울에 그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늘교육 임성호 대표는 “개정안에 문ㆍ이과 구분의 근본 원인인 수능과 대입제도에 대한 내용이 없어 학교ㆍ학부모ㆍ학생들의 혼란만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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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역량강화 없이 부실 우려

문?이과 구분 없이 모든 학생들이 통합과학, 통합사회를 배우도록 한 것은 이번 개정안의 주요 내용이나 이전에도 실패로 끝난 적이 있다. 2011년부터 고교 1학년이 배우는 융합과학 교과서는 물리ㆍ화학ㆍ생명과학ㆍ지구과학을 모두 담았지만 정작 학교에서는 교사들이 전공에 따라 떼어 가르치는 ‘융합 없는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서울 마포구 한 고교 교사는 “생명과학을 전공한 교사가 전문성이 떨어지는 물리ㆍ화학ㆍ지구과학까지 가르치려고 하니 수업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교사들의 준비 없이 과목만 통합했을 때 오히려 부실 수업을 초래할 수 있다는 단적인 예다. 하지만 남은 4년 안에 교과서 개발부터 교사 배치, 교습과정 개발이 준비되기는 빠듯하다.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모임 최미숙 대표는 “가정교과에서 소프트웨어 교육을 하기로 했지만 전문성이 결여된 기술ㆍ가정교사가 수업을 맡을 경우 학습 효과가 현저히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좋은교사운동본부 김진우 공동대표는 “교사들의 역량강화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또 다시 융합과학의 실패를 반복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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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마다 바뀌는 교육과정 피로감 커

의견수렴 없이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바뀌는 교육과정에 대한 불신도 상당하다. 이날 공청회에 참석한 한 중학교 교사는 “정부가 바뀔 때마다 교육과정을 뒤흔들어놓지만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게 우리 교육의 현 주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상설 국가교육과정위원회(가칭)를 만들어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장기적으로 교육과정을 개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히려 학습량이 늘어나 사교육 시장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임성호 대표는 “모든 과목을 공부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학원들을 많이 찾게 될 것”이라며 “벌써부터 전과목 종합반 학원이 잘 되지 않겠냐는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한양대 교육학과 정진곤 교수는 “왜 문ㆍ이과 통합을 해야 하는지, 융합형 인재는 어떻게 길러낼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핵심인데, 정부는 그런 고민 없이 과학, 사회 이수단위를 얼마로 할 것인지에만 초점을 두고 있다”고 비판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청주=정지용기자 cdragon2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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