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49) 감독은 괴짜 같은 연출자다. 지킬과 하이드를 동시에 품었다고 할까. 대중에게 알려진 그는 지킬 박사 같다. 이정재 이미숙 주연의 ‘정사’(1998년), 배용준 전도연 주연의 ‘스캔들-남녀상열지사’(203년)처럼 지극히 말끔하고 정돈된 영화가 그의 대표작이다. 하이드가 되면 실험적인 영화들이 터져 나온다. 전설의 괴작 ‘다세포소녀’(2006년)와 감독이 해외에서 원격으로 영화를 연출한다는 설정의 실험영화 ‘뒷담화: 감독이 미쳤어요’(2012년)가 대표적이다.
3일 개봉한 ‘두근두근 내 인생’은 이 감독의 영화 중 가장 ‘지킬스러운’ 작품이다. 김애란 작가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로 옮긴 이 작품은 ‘정사’나 ‘스캔들’처럼 도발적인 남녀관계를 그리지 않는다. 선천성 조로증에 걸려 열여섯이란 어린 나이에 죽음을 맞는 소년과 그를 돌보는 30대 초반의 젊은 부부 이야기다.
‘스캔들’ 이후 11년 만에 대중적 장르 영화로 돌아온 이재용 감독을 만났다. ‘두근두근 내 인생’에 연출자의 스타일이 잘 드러나지 않는 듯하다고 했더니 “스타일이 없는 게 내 스타일”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관심사가 다양하고 연출하는 영화도 제각각 이어서 ‘이재용 스타일’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는 설명이다.
“감독들은 늘 새로운 소재를 찾기 때문에 남들이 이야기하는 소설을 찾아 읽곤 합니다. 재미있게 읽긴 했지만 조로증을 표현하는 문제도 있고 여러 모로 대중적으로 풀기 쉽지 않을 것 같아 덮어두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 판권을 구입한 ‘영화사 집’이 연출 의향을 물어와 함께하게 됐습니다. 준비하고 있던 프로젝트가 있어서 처음엔 거절했다가 1년 뒤 다시 제안이 들어와서 함께한 거죠.”
이재용 감독은 지킬과 하이드 같은 작품 선택 방식을 홀수와 짝수로 정리했다. 데뷔작 ‘정사’ 이후 대중적인 작품은 홀수, 개인 취향을 극대화하는 작품은 짝수라는 것이다. ‘두근두근 내 인생’은 그의 일곱 번째 영화다. 그는 “원작을 각색하면서 나와 어울리지 않는 작품을 하는 건 아니라는 확신이 있었다”고 했다. 각색 과정에서 원작의 고유한 감성을 살리면서도 문어체 대사를 배우들의 입에 맞게 고쳤다.
이 감독은 자칫 어두울 수 있는 이야기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점이 자신의 취향과 맞았다고 했다. 웃고 있는데 눈물이 나는 영화를 찍고 싶은 갈망이 있었다고도 했다. 그에겐 해보지 않은 장르에 대한 도전이었다. “감동과 재미를 느끼면서도 자연스럽게 나도 몰래 눈물이 나는 영화를 찍는 게 목표 중 하나였다”는 것이다. ‘늙어간다는 것’에 대한 관심사도 원작과 통했다. “인생에 의문과 화두를 던지는 작품이 아니라 단순한 투병기로 눈물을 짜내는 영화였다면 연출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철없는 아빠 대수(강동원)와 생각이 깊은 아들 아름이(조성목) 이야기 위주로 흘러가는 원작과 달리 영화는 엄마 미라(송혜교)의 비중을 늘렸다. 아름이의 유일한 친구인 옆집 할아버지 장씨(백일섭)의 역할도 꽤 크고, 단 두 장면밖에 안 나오지만 대수 아버지(김갑수)도 묵직한 인상을 남긴다. 배우들의 고른 앙상블은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다.
“공평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누구 하나 서운하지 않게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요. 그래서 ‘여배우들’(2009년)에서도 골고루 비중을 나눴죠. 한 배우에게 몰아주기를 잘 못하는 것 같습니다.”
영화를 만들면서 어려웠던 점은 무엇일까. 그는 다양한 세대의 공감을 끌어내는 것이었다고 답했다. 감독 자신이 좋아하면서도 불특정 다수의 관객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배우, 스태프, 지인 등 되도록 많은 사람의 의견을 들으려 했다. 그는 “다양한 세대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고려해야 했기 때문에 힘이 들었지만 재미있는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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