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생겼어요…" 화양연화의 꿈이 손에 잡힐 듯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생겼어요…" 화양연화의 꿈이 손에 잡힐 듯

입력
2014.09.12 14:35
0 0
영화 '비긴 어게인' 한 장면
영화 '비긴 어게인' 한 장면
영화 '비긴 어게인' 한 장면
영화 '비긴 어게인' 한 장면

기사를 출고하면 부장이 종종 “이 영화 볼만한가”라고 묻는다. 얼마 전 내 취향대로 영화 두 편을 추천했다가 연달아 낭패를 봤다. 영화 A를 보고 나선 애들이나 보는 영화를 추천했다면서 내 수준을 의심했다. 영화 B를 보고 나선 “B가 A보다 훨씬 낫던데 (어떻게 두 영화를 같은 선상에 두고 추천할 수 있냐)”라며 내 자질을 의심했다. 영화 마케팅 베테랑인 친구 C도 얼마 전 비슷한 말을 했으니 정말 그런 것도 같다. 영화 A의 흥행 성적은 같은 날 개봉한 영화 B의 절반 수준인 74만명에 그쳤다.

부장이 흡족하게 본 영화 B, 지난달 개봉한 ‘비긴 어게인’이다. 부장이 말했다. “좌절하고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이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평소 하고자 했던 음악을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이루는 게 좋잖아. 화려한 뉴욕 이면의 삶을 볼 수 있는 것도 좋고.”

사실 이 영화가 이렇게까지 성공할 줄은 몰랐다. 존 카니 감독의 전작 ‘원스’보다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폴링 슬롤리’에 필적할 만한 명곡도 없잖은가. ‘비긴 어게인’의 흥행은 ‘원스’보다 훨씬 밝고 낭만적이기 때문이라 여겼다. 조금은 작위적이고 예쁘게 포장된 부분도 주효한 듯하다.

영화 '비긴 어게인' 한 장면
영화 '비긴 어게인' 한 장면

‘원스’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며 방심하다가 예기지 못한 장면에서 거의 울 뻔했다. 노숙인 일보 직전의 음악 프로듀서 댄(마크 러팔로)과 남자친구에게 차이고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 두 사람이 길거리 레코딩을 하기로 의기투합한 뒤 세션 연주자들과 옥상에서 녹음하는 장면이다. 오랫동안 악기를 연주하지 않았던 아빠 댄이 베이스를 연주하고, 음악평론가인 엄마가 “꽝이야”라고 평하던 딸 바이올렛이 보란 듯 기타 솔로를 펼친다. ‘텔 미 이프 유 워너 고 홈’이란 곡인데 노래 자체는 놀라울 만큼 평이하다. 이 장면의 핵심은 가족끼리 음악으로 진정한 대화를 한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패배자로 무시당하던 댄이 딸과 아내에게 실력을 인정 받고 무시당하던 딸도 아빠와 엄마에게 재능을 인정 받는 순간, 찡했다.

국내에서 이미 히트곡이 된 ‘로스트 스타스’를 그레타와 재회한 데이브(애덤 리바인)가 공연에서 부르는 장면 역시 훌륭하다. 팝 그룹 뉴 래디컬스의 멤버였던 그렉 알렉산더와 대니얼 브리스부아가 함께 만든 곡인데 공연 장면도 자연스럽고 그레타가 데이브의 제안을 뿌리치고 공연장을 나서는 마무리도 ‘원스’의 엔딩만큼이나 깔끔하다.

영화 '비긴 어게인' 한 장면
영화 '비긴 어게인' 한 장면

그 모든 장면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댄과 그레타가 Y잭으로 연결된 2개의 이어폰으로 서로의 스마트폰에 저장된 음악을 함께 듣는 대목이었다. 취향 맞는 친구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음악 이야기를 나누던 오래 전 기억이 스쳤다. 음악 취향을 공유하는 것이 영혼을 공유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였다. 댄은 이렇게 말한다. “난 이래서 음악이 좋아. 지극히 따분한 일상의 순간까지도 의미를 갖게 되잖아. 이런 평범함도 어느 순간 갑자기 아름답게 빛나는 진주처럼 변하거든. 그게 음악이야.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이런 진주들이 잘 보이지 않게 됐어.”

☞ 스티비 원더 'For Once In My Life'

진주 같은 음악을 만들려면 진주 같은 음악을 들어야 한다. 댄과 그레타는 뉴욕의 밤길을 걸으며 스티비 원더의 ‘포 원스 인 마이 라이프’(1968년)를 함께 듣는다. 원더의 화양연화가 시작했음을 알린 곡이다. “난생 처음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생겼어요 / 내가 오래도록 필요로 하던 사람 / 이번만은, 두려움 없이, 삶이 이끄는 대로 갈 수 있어요.”

뉴욕을 배회하던 이들이 마지막으로 듣는 노래는 영화 ‘카사블랑카’의 ‘애스 타임 고스 바이’다.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만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노래하던 곡. 댄과 그레타 모두 일생에 중요한 사람을 만났지만 연인으로 발전하진 않을 것이라고 두 노래가 넌지시 알려주는 듯하다. 노래는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비긴 어게인’의 원래 제목도 ‘캔 어 송 세이브 유어 라이프?’였다. 노래가 인생을 구할 수 있냐고? 아무렴, 그렇고 말고.

고경석기자 kave@hk.co.kr

☞ 비긴 어게인 OST FULL

☞ ‘비긴 어게인’ 중 ‘Tell Me If You Wanna Go Home’

☞ ‘비긴 어게인’ 중 ‘Lost Stars’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