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류 중심 급격한 식생활 변화
인체가 적응 못한 풍요의 질병
몸 속에 축적돼도 증상 못 느껴
혈관질환 발병 뒤엔 치료 쉽지 않아
“사냥을 하지 않아도 고기가 넘쳐나는 이곳이야 말로 우리가 간절히 원했던 지상천국이구나!”
현생인류의 시초인 호모사피엔스(home sapiens)가 불판에 익어가는 삼겹살을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인다. 현대생활 체험 3일차를 맞은 그에게 제공된 요리는 한국인이 즐겨먹는 삼겹살. 노릇노릇 잘 익은 삼겹살 10인분을 순식간에 해치운 그는 숙소인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돌아와 포만감을 느끼며 잠이 들었다.
육식은 물론 음주에 빠진 그는 현대생활 체험 1년 만에 서울대병원에 실려왔다. 그를 치료한 한정규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1년간 기름진 음식과 육류, 음주를 즐긴 결과 중성지방과 몸에 해로운 LDL 콜레스테롤이 쌓여 고지혈증, 심장병, 당뇨병 위험이 있다”고 진단했다. 제레미 리프킨이 ‘육식의 종말(Beyond Beef)’에서 경고한 ‘풍요의 질병’에 걸린 것이다.
호모사피엔스를 등장시킨 가설이지만 육식과 음주로 몸 속에 콜레스테롤을 쌓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경종을 울리기에 충분하다. 27일 성인병의 원인인 콜레스테롤에 대한 국민적 오해를 바로잡고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한국지질동맥경화학회에서 지정한 ‘콜레스테롤의 날’을 맞아 한 교수와 콜레스테롤의 문제점을 짚어봤다.
콜레스테롤은 인간은 물론 장기기관을 가진 하등동물까지 생성되는 방법이 동일하다. 원숭이, 침팬지도 인간과 같이 콜레스테롤을 갖고 있는데 수치가 미미하다. 한 교수는 “농경사회를 유지하며 살고 있는 이들의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은데 과도한 육식섭취를 하지 않는 것이 원인일 것”이라며 “인류가 매일같이 육식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불과 100년 밖에 되지 않았는데 급격한 식습관의 변화에 우리 몸이 대처하지 못해 생긴 것이 콜레스테롤 문제”라고 지적했다.
우리 몸에 해로운 LDL 콜레스테롤은 왜 생길까. 한 교수는 “간에서 주로 생성된 콜레스테롤은 단백질에 싸여 혈액을 타고 필요로 하는 장기와 근육으로 이동해 세포막을 형성하고 스테로이드 호르몬 등을 생성하는 역할을 한 뒤 다시 간으로 돌아와야 하는데 잘못된 식습관 등으로 과다하게 생성돼 혈관에 쌓여 문제가 발생한다”고 했다. 쉽게 말해 재고 처리가 되지 않는 것이다.
실례로 1주일에 3, 4회 음주하고 육식 등 외식을 즐기는 대기업 홍보팀장 조모(40)씨는 최근 몸이 무겁고, 업무집중도가 떨어져 건강검진을 받은 결과, LDL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조 씨의 LDL 콜레스테롤 수치는 145㎎/㎗. 과거 혈관질환을 앓은 경력이 없지만 그가 LDL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야 하는 이유는 당뇨병이 의심됐기 때문. 공복혈당 수치가 145㎎/㎗에 이른 그는 LDL 콜레스테롤 수치를 100㎎/㎗까지 낮춰야 한다. 중성지방 수치도 낮춰야 한다. 그의 중성지방(트리글리세라이드) 수치는 258㎎/㎗. 한 교수는 “중성지방 수치도 높아 지금보다 100㎎/㎗ 정도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콜 레스테롤이 무서운 것은 몸 속에 축적돼도 증상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한 교수는 “콜레스테롤이 쌓여 동맥경화, 뇌졸중, 심혈관 질환이 발생한 후 콜레스테롤 수치를 감소하기 위해 약물을 사용해도 예후가 좋지 않았다”며 “LDL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면 5년 이내 심장질환이 발생할 수 있는 확률이 3분의 1로 줄어드는 만큼 평소 건강검진 등을 통해 콜레스테롤 관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치중 기자 c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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