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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이 명성황후를 시해? 日 보도판화의 새빨간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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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이 명성황후를 시해? 日 보도판화의 새빨간 거짓말

입력
2014.09.1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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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소영 한국독립운동사硏 연구위원, 日의 근대 역사왜곡 분석해 책 펴내

지금의 사진뉴스처럼 믿어져

정권의 대중 선전도구 역할하며 조선을 무도한 나라로 알게 한 것

"일본의 뿌리 깊은 역사왜곡 행위, 잘못 따지고 시정 요구해야"

고통스런 표정의 명성황후가 궁의 난간을 잡은 채 쓰러져있다. 뒤엔 선혈이 낭자한 대검을 내리 꽂은 시아버지 흥선대원군이 서있다. 그의 독살스런 시선은 며느리를 향하고 있다.

1882년 8월 그려진 일본의 보도판화(니시키에)다. 누가 봐도 흥선대원군이 명성황후를 칼로 찔러 죽였다고 생각할 법한 그림이다. 같은 해 7월 23일 있었던 조선의 임오군란을 표현한 것이다.

이건 또 어떤가. 명성황후와 세자빈이 궁에서 파리한 얼굴로 주저 앉아있다. 그 곁엔 한 손에 커다란 잔을, 다른 한 손엔 큰 칼을 쥔 흥선대원군이 그악스런 얼굴로 서있다. 역시 같은 해 만들어진 일본 보도판화다. 설명문엔 “조선 왕성의 후궁에서 대원군이 독으로 명성황후와 세자빈을 시해했다”고 적혀있다. 흥선대원군이 며느리와 손주 며느리를 독살했다는 내용이다. 이 역시 임오군란을 묘사한 것이다. 물론 역사적 사실은 전혀 다르다. 실제론 급료를 받지 못해 반발한 군졸들이 일본 공사관과 조선 왕궁을 습격했지만 이미 명성황후는 궁을 빠져나간 상태였다. 흥선대원군은 군졸들에게 “왕비가 죽었다”고 거짓말했고 며느리의 공백을 틈 타 권력을 쥐었다.

요슈 치카노부가 1882년 임오군란 당시를 그린 보도판화 ‘조선국 왕성도’. 표독스런 표정의 흥선대원군(오른쪽 서 있는 이)이 피범벅의 대검을 내리꽂고 서 있고 그 앞에 명성황후가 쓰러져있다.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제공
요슈 치카노부가 1882년 임오군란 당시를 그린 보도판화 ‘조선국 왕성도’. 표독스런 표정의 흥선대원군(오른쪽 서 있는 이)이 피범벅의 대검을 내리꽂고 서 있고 그 앞에 명성황후가 쓰러져있다.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제공
같은 해 우타가와 구니마쓰가 제작한 또다른 보도판화 ‘조선사건 중 왕성 후궁도’는 흥선대원군이 명성황후와 세자비를 독살한 것처럼 묘사돼있다. 설명에도 “대원군이 독으로 명성황후와 세자빈을 시해했다”고 돼있다. 윤소영 연구위원은 “마치 흥선대원군이 황후를 시해한 골육상잔인 것처럼 의도적으로 왜곡해 제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제공
같은 해 우타가와 구니마쓰가 제작한 또다른 보도판화 ‘조선사건 중 왕성 후궁도’는 흥선대원군이 명성황후와 세자비를 독살한 것처럼 묘사돼있다. 설명에도 “대원군이 독으로 명성황후와 세자빈을 시해했다”고 돼있다. 윤소영 연구위원은 “마치 흥선대원군이 황후를 시해한 골육상잔인 것처럼 의도적으로 왜곡해 제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제공

그런데도 일본에선 ‘흥선대원군의 며느리 독살설’이 퍼져나갔고 이런 상상의 보도판화들이 제작돼 널리 유통됐다. 당시 보도판화는 ‘사진뉴스’의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대중에게는 사실처럼 인식됐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가 일본 보도판화의 역사왜곡에 주목한 이유다. 연구소의 윤소영(51) 연구위원이 최근 펴낸 ‘일본근대의 보도판화는 한국사를 어떻게 왜곡했나?’는 일본 보도판화의 역사왜곡을 분석한 책이다.

윤 연구위원은 “임오군란 때 일본에 전해진 오보를 근거로 자극적인 보도판화가 제작됐고 급기야 흥선대원군이 명성황후를 대검으로 죽인 것처럼 왜곡된 보도판화까지 그려졌다”고 설명했다. “그로써 당시 일본 민중에게 조선이란 나라는 시아버지가 왕비인 며느리를 죽이는 무도하고 무지한 나라라는 이미지를 심어줬다”는 것이다.

일본의 보도판화는 정권의 선전도구 역할도 충실히 수행했다. 여타의 왜곡 사례가 이를 방증한다. 1894년 조선 조정에서 청나라의 위안스카이와 일본의 오토리 공사가 벌이는 담판을 그린 보도판화에서 주인공은 두 사람이다. 왼편의 위안스카이는 멈칫한 표정이고 오른쪽의 오토리 공사는 일어서서 위안스카이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고 있다. 오토리 공사 곁의 일본 장성들도 위안스카이를 노려본다. 위안스카이와 오토리 공사의 배경에는 고종, 흥선대원군, 김홍집이 두 손을 모으고 다소곳하게 앉아있다. 윤 연구위원은 “위풍당당한 일본 뒤에 조선이 의존적으로 숨어 있는 구도”라며 “청일전쟁의 명분이 마치 일본이 조선을 지켜주기 위한 목적인 것처럼 왜곡하는 보도판화”라고 설명했다.

책에는 1875년 일본군이 강화도에 불법 침입해 영종진을 약탈, 방화한 운요함 사건의 발단을 왜곡한 보도판화, 임오군란 때 사실과 달리 조선인이 일본 공사관에 불을 지른 것으로 제작한 보도판화 등 그림자료 91점이 설명과 함께 실려있다.

윤 연구위원은 “보도판화들은 전반적으로 조선과 일본을 야만 대 문명, 약자 대 강자, 악과 선의 구도로 표현하고 있다”며 “일본 역사왜곡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일본의 보도판화는 내무성의 검열을 받고 제작됐기 때문에 정권의 의도도 반영하고 있었다. 윤 연구위원은 “이런 왜곡된 보도판화들이 현재까지 이어져 일본인들에게 사실로 인식되고 있다”며 “분석 자료를 통해 일본에 잘못을 따지고 시정을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도 일본의 왜곡 사료를 제대로 모르긴 마찬가지다. 윤 연구위원은 “일본의 치밀한 역사 왜곡을 학교 교육 현장에서부터 제대로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독립기념관이 이 책을 한국어판과 일본어판의 두 버전으로 제작한 것도 그래서다. 독립기념관은 이 책을 국내 초ㆍ중ㆍ고, 대학과 공공도서관 그리고 일본의 대학 도서관, 한국학연구기관, 초ㆍ중ㆍ고 교원조합, 평화운동시민단체 등에 배포할 예정이다. 윤 연구위원은 “이 책은 독립기념관이 발간할 일본 역사왜곡 시리즈의 첫 번째”라며 “앞으로도 분석, 발간 작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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