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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자식과 단식

입력
2014.09.1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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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식의 고통을 좀 아는 편이다. 여러 차례 일부러 해봤고 아파서도 해봤다. 가장 길었던 게 열흘 정도였고 보통 3~4일 하는데 단식을 하면 몸과 마음이 맑아진다. 의사도 그렇게 말하고 내가 해봐도 느낄 수 있다. 대장이 깨끗해지며 혈당과 콜레스테롤 수치도 내려가고 위장이 좋아진다는 정도는 세간에 돌아다니는 상식이다.

그러나 음식에 대한 강렬한 유혹 때문에 고통스럽다. 나는 식탐이 없는 편인데도 그랬다. 심지어 커피믹스 한 잔에 대한 갈증으로 몸이 떨리기도 했다. 우리는 먹어야 사니까 굶으면 고통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오래 했던 사람들에게 들어보면 치아 상태가 몹시 나빠지고 몸도 맑은 것을 넘어 무기력하고 아프게 된다고 한다. 체지방을 모두 쓰고 나면 근육을 에너지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포도 한 알 받아먹고 엉엉 울었다는 단식자의 말도 기억한다.

농성의 불편도 알고 있다. 내가 속한 작가회의라는 데가 농성과 데모를 자주하는, 오래전 독재정권에 대항하여 만들어진 곳이라서 그렇다. 십여 년 쯤 전 그곳 청년위원장과 사무국장 할 때 앞에 나서서 농성을 준비하고 선배 동료 작가들과 거리로 뛰어나가곤 했다. 땡볕과 비바람 속에서 자리를 지키는 불편은 안 해본 사람은 모른다.

자식을 잃은 자의 고통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나도 딸이 있기 때문에 짐작은 한다. 단장(斷腸). 사람들에게 새끼를 빼앗긴 어미 원숭이가 울부짖으며 강둑을 따라오다가 죽고 말았는데 배를 갈라보니 내장이 모두 끊어져 있더라는 중국 고사는 유명하다. 이 이야기를 듣고 그럴 리 없다고 고개 젓는 사람은 단 한명도 못 봤다. 공감한다는 뜻이다.

세월호 관련 뉴스를 보면서 나는 두 번 울었다. 어떤 뉴스에서 한 남학생의 아버지가 아들 잃어버린 심경을 차분하게 이야기하다가 끝내 오열하고 말았을 때 따라 울었다. 또 한 번은 여학생 때문이었다. 엄마, 아빠에게 남겼던 동영상 속에서 그 아이는 절규하듯 ‘엄마 아빠 미안해’를 되풀이 했었다. ‘무서워, 도와줘’ 가 아니었다. 다가오는 죽음을 예감했고 그것이 부모에게 얼마나 큰 아픔과 상처가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애는 고작 고등학교 2학년이지만 그 절박한 순간에도 자신의 무서움과 고통보다 자신으로 인해 상대가 얼마나 힘들어 할까를 생각하는 어른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다르게 말하면 어른이란 그래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나는 또 참지 못하고 오열하고 말았다.

자식이 살해당했을 때 우리 조상들이 썼던 전통적인 방법을 떠올려보면 뭐 다른 거 없다. 돌멩이나 식칼이나 닥치는 대로 들고 가해자에게 달려들어 목숨 걸고 싸웠다. 눈에 보이는 게 없으니까. 내장이 끊어질 것 같으니까. 지금은 성숙한 시민사회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방법 안 쓴다. 그래서 하는 것이 농성이고 단식이다(단식은 미온적인 자살방법이기도 하다). 삼보일배도 같은 이유이다. 인간성에 호소하기 위해. 우리는 같은 자루 속의 콩알처럼 함께 지내야 하는 사회구성원이기 때문에.

그런데 자식을 잃은 이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있다. 타인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정말로 아픈지 대꼬챙이로 쿡쿡 찔러보는 행위들. 뉴스에 자주 나오기 때문에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학생 유가족들이 집단행동을 하는 것은, 그리고 거기에 시민들이 동참하는 이유는 첫째가 모성(母性)이다. 이들이 요구하는 재발방지도 모성이다. 사고 원인을 규명하지 않고 책임자 처벌이 없다면 분명 이런 참사가 되풀이 될 것이고 그러면 또 다른 어린이와 학생들이 졸지에 죽어나가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 모성을 조롱하고 훼손시키고 윽박지르는 사람들. 이거 정말 부끄럽기 짝이 없다. 사람이라면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다른 사람에게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상처를 주는 짓이다. 유가족들은 이미 그런 상처를 받았는데도 이렇다. 모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 잘 먹고 잘사는 것만 최고 가치가 되어버린 사회. 이거 정상 아니다. 좀 야위더라도 사람답게 사는 모습을 되찾기 위해서 대한민국이 단식을 해야 할 때이다.

한창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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