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법 위반만 유죄 판단… 법원, 1심서 집유 4년 선고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사건’에 대해 법원이 위법한 정치개입이라고 인정하고도 선거운동은 아니라고 판결했다. 11만여건에 이르는 온라인 글의 내용과는 무관하게,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명시적으로 18대 대선 선거운동을 지시하지 않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정권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정치적 판결”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 이범균)는 11일 원 전 원장의 선고 공판에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 국가정보원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로 각각 판단해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이종명 전 국정원 3차장과 민병주 전 심리전단장도 국정원법 위반만 인정돼 각각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재판부는 “국가기관이 여론 조성을 목적으로 직접 개입한 행위는 민주주의 근간을 뒤 흔든 것으로 그 죄책이 무겁다”면서도 “원 전 원장 등 국정원 직원들의 (범행) 목적은 북한의 허위사실 유포 및 흑색선전에 대응한 것으로 그 동기를 참작할 필요가 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현행 국정원법 9조는 국정원 직원은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에 대해 지지 또는 반대 의견을 유포하는 등의 정치활동 관여를 금지하고 있다. 재판부는 검찰이 공소 제기한 심리전단 직원들의 활동 가운데 인터넷 사이트에서의 찬반클릭 1,214건, 게시글 및 댓글 2,125건, 트윗ㆍ리트윗 글 11만3,621건이 국정원법 상 금지된 정치관여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고 유죄의 근거로 삼았다.
하지만 재판부는 “(심리전단이) 계속적ㆍ반복적으로 해 오던 업무가 선거 시기가 되었다고 선거운동행위가 된다고 볼 수는 없다”며 “원 전 원장이 특정 선거나 특정 후보자를 염두에 두고 조직적인 선거운동을 지시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국정원 직원들이 여당을 지지하고 야당을 비방하는 온라인 활동을 하기는 했지만 특정 후보를 당선ㆍ낙선시키는 선거운동의 목적성, 능동성, 계획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피고인 원세훈의 전부서장회의 발언을 살펴보더라도 직접적으로 제18대 대선에 관하여 선거운동을 지시한 것으로 파악되는 부분은 찾을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재판부는 “선거일에 가까워질수록 선거운동이 활발해지는 것이 일반적이나 (심리전단의 트위터 활동이) 대선 직전 감소하는 양상을 보여 선거운동으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법원이 선거운동을 지나치게 좁게 해석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미 공개된 원 전 원장의 부서장 회의 발언에는 “총선도 있고 대선도 있고 종북좌파들은 북한과 연계해가지고 어떻게 해서든지 다시 정권을 잡으려고 한다” “금년에 잘못 싸우면 국정원이 없어지는 거야” 등의 내용이 있지만 법원은 이를 선거운동 지시로 보지 않았다.
박근혜 후보를 찬양하고, 문재인 안철수 후보를 비방하는 내용의 온라인 글 자체에 대해서는 선거법 위반에 해당하는지 판단하지 않아 핵심을 비켜갔다.
임현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재판부가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 한 것은 인정하고도 지엽적 문제로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국정원장의 대선 개입에 대해 엄단하는 선례를 남겨야 했는데 법원이 정치적 고려를 한 것으로 보여 안타깝다”고 말했다. 박주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처장은 “법원은 지금까지 선거시기 특정 정당에 유ㆍ불리한 글만 반복 게재해도 목적성을 인정해 유죄 판결을 내렸는데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원 전 원장은 선고 뒤 “공직선거법 위반에 대해 무죄로 판명돼 (재판부에) 감사하다”면서도 유죄 부분에 대해서는 항소의사를 밝혔다.
조원일기자 callme1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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