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이냐 잔류냐, 스코틀랜드 아슬아슬 표심에 영국 흔들
2012년 11월 캐머런의 오판… 민심 달래기 위해 분리독립 투표 허용
1인당 GDP 2만6000파운드? 북해유전 생산성 갈수록 떨어지고 파운드화 사용 금지 등 걸림돌
영국 왕실은 중립 의지 표명… 美·中·호주는 반대 입장 분명히
젊고 역동적인 이미지로 43세의 나이에 최연소 영국 총리에 오른 데이비드 케머론(48) 총리. 이 야심만만한 정치인은 지난 2012년 11월 세계사에 기록될만한 정치적 ‘오판’을 한다. 스코틀랜드에서 경제적 어려움으로 반잉글랜드 정서가 들끓자 민심을 달래기 위해 스코틀랜드의 오랜 열망인 분리독립 주민투표를 허용한 것이다.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움직임이 거세지며 대영제국이 요동치고 있다. 올해 초까지도 분리독립 반대 여론에 30% 가량 뒤지던 찬성여론이 투표날짜가 가까워지며 반등하더니 6일 영국 여론조사 기관 유고브가 이달 2~5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찬성 51%로 반대 48%를 앞지르는 ‘이변’이 연출됐다. 캐머런 총리는 307년간 지속된 대영제국을 해체한 장본인으로 기억될 지 모른다.
뿌리깊은 반잉글랜드 정서
캐머론 총리가 간과한 것은 스코틀랜드의 뿌리깊은 반잉글랜드 정서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영국과 프랑스가 축구 경기를 하면 프랑스를 응원한다. 잉글랜드가 끊임없이 스코틀랜드를 침입하고 지배했기 때문이다. 스코틀랜드 국왕 제임스 6세가 1603년 영국 국왕으로 즉위하며 단일 국가가 됐지만 스코틀랜드는 독자적인 사법제도와 의회를 유지하며 독립을 열망해 왔다.
누적된 민족 갈등은 경제난을 계기로 폭발했다. 마가렛 대처 총리는 재임시절 강력한 민영화 정책으로 스코틀랜드 경제의 기반이던 철강 조선 산업을 해체했다. 당시 스코틀랜드 주민 5명중 1명이 직장을 잃었다. 여기에 2008년 뉴욕발 금융위기가 일자 영국 보수당은 적자재정 타개를 이유로 스코틀랜드 정부에 긴축 재정을 요구했다. 결국 성난 스코틀랜드 주민들은 2011년 ‘분리독립’을 공약으로 내건 스코틀랜드국민당(SNP)을 다수 여당으로 선택한다.
강소국 꿈꾸는 스코틀랜드
스코틀랜드 분리독립을 진두지휘하는 선장은 SNP의 당수이자 스코틀랜드 자치수반(총리)인 알렉스 새먼드(60)다. SNP는 1934년 스코틀랜드 분리독립을 이념으로 한 소수 정당이다. 19살에 SNP에 입당한 새먼드는 각종 TV 토크쇼에 출연하고 독립 의식을 고취하는 음반을 내며 분리독립 정책과 그 장점을 설명해 왔다. 스코틀랜드 주민들은 80여년 SNP의 성장을 지켜보며 동안 독립의 가능성을 점친 셈이다.
이들이 제시하는 독립 스코틀랜드의 미래는 밝다. 새먼드 총리는 “스코틀랜드가 영국으로부터 떨어져 나올 경우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영국의 2만2,000파운드(약 3,700만) 보다 높은 2만6,000파운드(약 4,300만원)로 올라 세계에서 8번째로 부유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자신감의 밑바탕에는 스코틀랜드의 풍부한 천연자원이 있다. 스코틀랜드는 1조 5,000억파운드(약 2,508조원) 상당의 석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된 북해유전의 84%를 가지고 있다. 새먼드 총리는 또 “영국 정부가 걷던 세금을 새 자치정부가 가져오면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며 “이를 통해 북유럽 국가와 같은 무상 보육과 최저임금 인상도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문제는 북해유전의 생산성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1970년대 이후 400억 배럴의 원유를 생산한 북해유전은 남은 매장량이 150~165억 배럴 정도로 2050년이면 모두 소진 될 것으로 전망된다. 스코틀랜드에서 50여년 간 채굴 사업을 벌인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 등 세계적 석유 회사들도 “영국에 남아 있는 게 에너지 산업에 도움이 된다”고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화폐도 걸림돌이다. 새먼드 총리는 파운드화를 지속적으로 사용하겠다고 했지만 마크 카니 영국 중앙은행장은 9일 “영국에서 이탈하면 파운드화를 쓸 생각을 하지 마라”고 강력히 경고했다. 또 분리독립이 이루어질 경우 영국 정부에 진 230억 파운드(약 40조 945억원)의 채무를 즉시 상황하라고 요구했다.
두 개로 쪼개진 스코틀랜드, 반대하는 세계 여론
스코틀랜드 내에서의 찬반운동도 후끈 달아 올랐다. 에든버러에 21년째 거주하고 있는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K. 롤링은 지난 6월 스코틀랜드 독립 반대 운동 진영 ‘배터 투게더(Better Together)’에 100만 파운드(약 17억원)를 기부했다. 그녀는 “독립 찬성 진영의 낭만적 공약에 끌리긴 하지만 여러 위험 요소를 축소하거나 부인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반대 이유를 설명했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영화배우 숀 코너리는 분리독립 찬성 캠페인인 ‘예스 스코틀랜드(Yes, Scotland)’의 열성 지지자다. 심지어 “독립하지 않으면 스코틀랜드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3월 영국 일간지 더 선에 “새 나라를 건립하는 것보다 더 창의적 예술은 없다”고 기고하기도 했다.
세계 여론은 스코틀랜드 분리독립에 우호적이지 않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리커창 중국 총리는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영국의 대표적인 우방인 호주의 토니 애벗 총리는 “스코틀랜드의 독립은 세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까지 했다. 이들이 돕지 않으면 유럽연합(EU)이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도 불가능하다.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독립 투표, 다급해진 영국 정가
영국 정부와 의회는 뒤늦게 사태 수습에 나섰다. 9일 영국 의회는 총리 관저가 있는 런던 다우닝가 10번지에 영국과 스코틀랜드가 하나의 국가라는 것을 보여주는 의미로 스코틀랜드 국기를 내걸었다. 다음날 캐머론 총리는 스코틀랜드 애든버러로 날아가 청중을 향해 필사적으로 호소했다. “우리는 가족이 갈가리 찢어지길 바라지 않습니다. 대영제국은 소중하고 특별한 나라입니다.”
야당인 노동당도 다급해 졌다. 영국 하원의석 중 59석이 스코틀랜드에 배당돼 있다. 독립이 이루어지면 스코틀랜드가 차지하는 노동당 의석 40석 이상이 사라진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고든 브라운 전 총리는 독립 여론 분출의 원인을 보수당 연립정부의 무능으로 돌리며 “투표가 부결되면 곧바로 중앙의회 차원에서 자치권 확대 논의에 돌입하겠다”고 공약했다.
영국 왕실은 중립 의지를 표명했다. 9일 버킹엄궁 대변인은 "헌법에 따른 왕실의 공명정대함은 우리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라며 "여왕은 이러한 정치문제를 벗어나 있으며 이번 문제는 정치권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앞서 새먼드 총리는 스코틀랜드가 독립하더라도 엘리자베스 여왕을 계속해서 국가원수로 유지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스코틀랜드가 정말 독립할 수 있을까? 여론조사기관 TNS의 스코틀랜드팀장인 톰 코스틀리는 AFP통신에 “표심이 눈에 띄게 변하고 있다”며 “아슬아슬한 접전 양상이어서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캐나다에서는 1995년 유일한 프랑스어 사용 지역인 퀘백주가 분리독립 주민투표를 실시해 1% 차이로 잔류를 결정한 전례가 있다. 분리독립 반대파는 퀘백주의 선거가 재현되길 기대하고 있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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