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은 누군가 기다려지는,
야트막한 산등성이 있어 고향이다.
그 산등성 너머 흰 연기를 토하고 달리던 하오 두 시
완행열차의 기적이 있어 고향이다.
기적 끊긴 적막한 겨울 오후, 긴 날개의 그림자를 땅 위에 드리우며
하루 종일 하늘을 맴돌다가 사라지던 소리개가 있어 고향이다.
소리개를 좇아 불현듯 줄을 끊고 산 너머로 달아나버린 연, 그 연을 찾으러
함부로 뛰어다니던 언덕이 있어 고향이다.
머리 희끗희끗
한번 떠난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은
멀었다.
먼 항구의 불빛과 낯선 거리의 술집과 붉은 벽돌담과 교회당의 뒤뜰을 걸어서
그 언덕에 다시 섰는데
왜 이제는 이다지도 기다릴 사람이 없는가.
고향은 누군가를 기다릴 수 있어
고향이다.
시인소개
오세영(72)은 전만 영광 출신으로, 전남 장성, 전북 전주에서 성장했다. 서울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충남대 교수를 역임하고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로 정년퇴임했다. 1965~68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바람의 아들들’, ‘별밭의 도소리’ 등이 있고, ‘시론’, ‘한국현대시인연구’ 등 수십권의 학술서적이 있다.
해설: 시인 서태수
바쁜 일상에 부대끼면서도 고향이 문득 그리워지는 때가 있다.
조락의 기운을 몰고 오는 초가을. 한가위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계절이다. 고향 상실의 시대를 살아간다지만 여우도 수구초심이라. 기다릴 사람이 있든 없든, 고향길은 한 줄기 가느다란 탯줄로 이어진 서정의 옛 길이 아니던가. 오늘도 시인은 갑년 너머의 세월을 거슬러 고향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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