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아침을 열며] 농축재처리의 신화와 현실

입력
2014.09.10 20:00
0 0

우리 국민과 언론은 농축재처리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갖는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협상에도 관심이 높다. 그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농축재처리의 신화에 대한 믿음이 있다. 첫째, 핵주권을 회복한다. 핵주권의 핵심인 농축재처리가 기존 한미 원자력협정에서 거부되었으므로 신 협정에서 이를 확보하고 핵주권을 회복한다. 둘째, 핵잠재력을 보유한다. 북핵에 대응하기 위해서 최소한 농축재처리 능력을 획득하여 핵잠재력을 갖추어야 한다. 셋째, 핵연료주기 자립을 통해 에너지안보를 강화한다. 농축재처리를 확보하여 핵연료 공급과 사용후 핵연료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원자력의 경쟁력과 지속성을 강화한다.

그런데 농축재처리가 우리 주권과 안보와 원자력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인가. 한때 만병통치약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시대도 있었지만, 결국 빈 약속이 되고 말았다. 농축재처리의 효과와 실현성을 과대포장하고, 외교·사회·기술적 제약과 비용을 외면하는 오류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3개 신화의 현실은 어떤가.

첫째, 오늘 핵주권론이 설 자리가 없다. 핵주권은 국제사회에서 통용되지 않고, 핵무장을 연상시키는 위험한 용어이다. 북한처럼 세계 핵비확산 규범을 전면 부정하거나, 일부 도전적인 비동맹권 국가만이 주장한다. G20 정상회의와 핵안보정상회의를 주최한 중견국이며, 세계 5대 원전수출국인 한국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사실 핵확산금지조약(NPT) 4조의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양도할 수 없는 권리’는 농축재처리를 포함한다고 해석된다. 따라서 한국도 NPT 회원국으로서 양도할 수 없는 농축재처리 권리를 갖는다. 다만 한미관계와 다른 복합적 변수와 국익을 고려한 정책적 결정에 따라 농축재처리 권리를 행사하지 않을 뿐이다. 한미 원자력협정에 따른 미국의 핵통제권은 자신이 제공한 물자와 기술에 한정되므로, 우리 기술진이 미국 통제권이 미치지 못하는 별도 농축재처리 시설을 만드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이 옵션도 한미동맹과 북한문제와 기타 국익을 고려하여, 정책적으로 행사하지 않을 뿐이다.

둘째, 농축재처리를 통한 핵잠재력 보유 주장은 불가능하고 위험한 주장이다. 만약 우리가 핵잠재력을 추구하면, 주변국뿐만 아니라 국제사회 전체가 등을 돌릴 것이다. 오늘 핵비확산 국제체제는 강력한 강제적 집행장치를 갖추고 있다. 누구든 핵잠재력을 추구한다면 북한이나 이란 수준의 경제제재와 외교고립에 직면할 것이다. 특히 세계 핵비확산체제를 주도하는 미국은 모든 가용한 정치외교경제적 수단을 동원하여 압박할 것이다. 핵잠재력 추구가 한국의 방위력을 강화하기는커녕 오히려 국익과 안보를 크게 해치는 결과를 초래하는 셈이다.

셋째, 농축재처리는 더 이상 원자력의 자립과 활성화를 위한 필수조건이 아니다. 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농축재처리가 원자력의 필수조건으로 간주되고, 기술이전도 아무 제약이 없었다. NPT 체제가 가동되면서 민감기술에 대한 통제가 강화되었다. 특히 1974년 인도의 핵실험 이후 미국은 농축재처리의 확산 저지를 최고 안보정책으로 추진하였다. 실제 북한과 이란을 제외하고는 70년대 이후에 농축재처리를 신규 도입한 나라는 없다. 한국은 농축재처리 없이 원자력의 활용과 수출에 성공한 사례로 국제사회에서 높이 평가 받는다. 만약 한국이 농축재처리를 도입하려면, 미국의 핵비확산정책과 국제적 비확산 추세를 거슬러야 한다. 그럴 가치가 있을까.

요약하면 전통적 농축재처리는 각종 현실적 장벽에 부닥쳐 설 자리를 잃었다. 한편, 국제사회는 전통적 농축재처리의 대안을 적극 모색 중이다. 정치적으로는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다자적·지역적 접근을 모색하고, 기술적으로는 핵비확산성이 높은 첨단기법을 개발 중이다. 한미 원자력협력도 전통적 농축재처리를 지양하고, 미래지향적이며 지속 가능한 대안을 개발하는데 힘을 합쳐야 한다. 한국은 동북아 평화협력구상 주창국이며 세계평화와 번영을 추구하는 중견국으로서 새로운 핵연료주기 모델을 창출할 책임을 공유한다. 신 원자력협정은 양국의 공동이익과 세계평화를 위해 건설적 대안을 창출하는 플랫폼이 되기를 기대한다.

전봉근 국립외교원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