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비자금을 관리하는 비밀기관원이라고 속여 12억여원을 뜯어낸 일당이 붙잡혔다. 이런 사기극은 올해 들어서만 열세 번째다.
서울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총책 박모(55)씨를 구속하고 자금관리책 류모(50)씨와 알선책 이모(44)씨 등 공범 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10일 밝혔다. 경찰은 달아난 자금관리책 이모(48)씨 등 공범 2명을 쫓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중고차 수출업자 류모(37)씨는 2012년 5월 지인을 통해 “대통령 비선조직 총괄권력기관 총재”라는 박씨를 소개받았다. 공범들은 “박씨가 박정희 전 대통령 등 전직 대통령들의 비자금을 관리하며, 조직은 국제통화기금(IMF)도 쥐락펴락한다”고 허풍을 떨었다.
박씨는 류씨에게 “우리 조직이 보관 중인 금괴 수십만톤과 고액 채권을 현금화하는데 비용을 대면 수십배의 이익금을 보장한다”고 유혹했다. 처음에는 류씨가 투자한 돈을 은행에 넣고 현금보관증을 맡기면서 안심시켰다. 또 류씨를 하루 숙박비 70만원인 서울 강남의 호텔에 묵게 하면서 ‘큰 손’ 이미지를 심었다.
이들은 류씨가 자신들을 믿는 듯하자 곧 마수를 뻗쳤다. 5,000억엔 상당의 위조 채권과 금괴 증서 등을 내밀면서 “이를 현금화하려면 국가정보원 등의 승인 처리비가 필요하다”며 투자를 요구했다. “5억원을 맡기면 사흘 뒤 30억원을 준다”는 제안을 류씨는 의심하지 않았다. 이들은 “해외건설 사업권도 주겠다”며 지난해 8월 류씨를 미얀마로 데려가 미리 섭외한 가짜 정부 관료와 만나게 했다. 이렇게 류씨는 지난해 11월까지 88회에 걸쳐 11억4,000여만원을 뜯겼다. 보석 가공업자 박모(72)씨와 전자성경책 제작업자 양모(56)씨도 같은 방법으로 각각 5,300만원과 6,000만원을 사기 당했다.
이들은 뒤늦게 사기인 것을 깨달은 피해자들의 신고로 지난달 27일 호텔방에서 덜미를 잡혔다. 당시 이들은 홍콩 은행에 300억달러가 예치됐음을 증명하는 위조 증명서를 만들고 있었다. 방에는 5,000억엔 상당의 위조 채권 52매, 1달러 지폐를 액면가만 바꾼 100만달러 위조 지폐 290매 등 252조원대 위조 화폐와 채권이 쌓여 있었다.
이렇게 ‘대통령 측근’ ‘비선조직’ 등을 사칭하며 투자금을 받아 가로챈 사기극이 잇따르고 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불경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범죄자들이 권력을 이용하면 짧은 시간에 돈을 벌 수 있을 거라는 사람들의 기대심리를 이용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이전 대통령들의 비자금이 문제가 되면서 실제로 비자금 관리자가 있을 수 있다는 사회심리도 작용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손현성기자 h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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