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장애인 뒤늦게 경찰 지원 요청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 5일 충남 논산시의 한 주민센터 앞에서 주모(51ㆍ여)씨는 모처럼 환한 웃음을 지었다. 이름 석 자를 새긴 도장이 처음 생겼기 때문이다. 이름도 몰라 혼인 신고도 못한 채 22년 동안 함께 산 남편과 혼인 신고를 하기 위한 도장이라 더욱 의미 있었다. 지적 장애를 가진 것으로 추정되는 주씨는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 채 수십년 동안 이름 없는 ‘아무개’로 살다가 최근 한 경찰의 도움으로 자신의 이름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주씨는 수십 년 전 알 수 없는 이유로 가족과 떨어지게 됐다고 한다. 이후 자신의 존재를 잊은 채 살아야 했다. 이름과 호적이 없다 보니, 형편이 안 좋아도 국가의 지원을 받을 수 없었고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했다. 그의 이름을 찾아 준 논산경찰서 김영만 경위와 주씨가 만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지난달 중순 몸이 심하게 아팠던 주씨는 논산경찰서 논산지구대 문을 두드렸다. 주씨는 당시 근무중이던 김 경위에게 어눌한 말투로 “병원에 갈 수 없어서 여기에 왔다”고 했다. 이상하게 여긴 김 경위는 2시간 가량 주씨와 이야기를 나눴고 초등학교를 졸업한 점, 어렸을 때 어머니와 기차를 타고 다녔던 점 등을 알아냈다. 그런데도 정작 주씨는 본인의 이름 석자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고 한다. 김 경위는 “본인이 주씨 성을 가진 것 조차도 제대로 확신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주씨는 김 경위에게 “엄마가 사진 붙여진 것을 만들어 줘 자랑하고 다녔다”고 말했고 김 경위는 주씨가 주민등록증을 만든 적이 있다고 판단, 지문 조회를 통한 신원 파악에 나섰다. 며칠 후 충남 연기군에 적을 둔 1963년생 ‘주○○’씨와 동일인임이 밝혀졌다. 다만, 주씨의 호적은 알 수 없는 이유로 말소돼 있었다. 하지만 과거 흔적들을 찾을 수 있었다. 1991년 서천군에서 잠시 살았고 오빠와 동생 등 가족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김 경위와 서천군 측은 추석 연휴가 끝나는 대로 주씨의 혼인신고 절차를 마무리하는 한편, 주씨와 가족들이 원할 경우 서로간의 만남도 추진할 예정이다. 또 주씨가 의료보험 등 각족 사회ㆍ의료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사회복지사와 상의할 예정이다. 김 경위는 “주씨가 한가위 직전 오랫동안 잊혀졌던 본인의 이름을 찾게 돼 다행”이라며 “주씨는 물론, 남편과 딸도 함께 기뻐해 더욱 보기 좋았다”고 말했다.
강주형기자 cub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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