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골목에 일 년 넘게 빈 화분이 하나 나와 있어요.” 함께 길을 걷던 A가 입을 열었다. 내가 쓰레기통을 찾아 고개를 두리번거릴 때였다. “희고 커다란 화분인데요…” 골목을 오갈 때면 A는 그쪽으로 자꾸 눈길이 향한다 했다. 안에는 행인들이 던져 넣은 페트병이나 담배꽁초가 늘 들어있지만, 제법 말끔해서 버려진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식물 대신 쓰레기를 키우는구나. 이런 생각이 드니 A는 그 화분이 점점 좋아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화분에 종이가 나붙었다. ‘내가 쓰레기통으로 보이냐?’ A는 멀뚱히 서서 매직펜으로 갈겨쓴 그 글자들을 바라보았다. 화분 주인이 써놓은 것이겠지만 정말 화분의 목소리 같기도 했다. 쓰레기통이 아니니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는 뜻이련만 말 그대로 쓰레기통으로 보이냐는 확인 같기도 했다. “쓰레기통처럼 보이는 게 싫으면 집에 들여놓으면 되잖아요. 아니면 식물을 심거나 하다못해 흙이라도 담아 놓던가요. 쓰레기통으로 쓰라는 듯 밖에 내놓고 쓰레기통으로 보이냐 물으니 재미있지 않아요?” A는 이렇게 덧붙이고 빙긋 웃었다. 낙서금지라는 낙서가 낙서를 부추기는 것만큼 그날 이후 한층 더 화분에 아무거나 집어넣고 싶어지더라나. 손에 들린 과자봉지나 귤껍질이 있으면 냉큼 던져 넣고 어떨 땐 버릴 물건이 없나 부러 가방을 뒤지기도 한단다. 말의 괴상한 효력 덕에 쓰레기통으로 확실히 변신한 화분이 A는 한결 더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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