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가사 학업 병행·노후 안정 장점, 시간제 일자리 인식 좋아졌지만
평균 시급 7420원 알바 수준 그쳐 상용직도 시간제 전체의 9.4%뿐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중소기업에서 근무했던 이상미(가명ㆍ33)씨는 직장 생활 틈틈이 4년제 야간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했다. 전공을 살려 이직을 했지만 결혼 후 임신을 하면서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다. 첫째 아이가 세 살 되던 2007년 한 중소기업에 어렵게 다시 취직했지만, 2년차에 둘째를 임신하며 세 번째 직장마저 그만두었다.
이씨는 “올해 둘째가 유치원에 입학하면서 다시 직장을 구하고 있지만 회사를 그만둔 지 오래된 데다 두 아이 육아와 병행해야 해 일자리 구하기가 예전보다 훨씬 어렵다”며 “정부가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늘린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일자리도 적을뿐더러 막상 찾아보면 시급이 최저임금을 겨우 넘은 아르바이트 수준”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고용률 70% 로드맵의 일환으로 시간선택제 일자리 정책을 발표한 지 1년여가 지났지만 실제 일자리 창출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고용노동부는 5월 20세 이상 남녀 1,500명에게 시간선택제 일자리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 시간제 일자리 취업희망자가 지난해 63.5%에서 올해 73.6%로 10%포인트 이상 상승했다고 9일 밝혔다. 육아ㆍ가사 등과 병행하기 위해서(32.1%), 학업 등 자기계발과 병행하기 위해서(19.1%), 퇴직 후 노후 일자리로 괜찮기 때문(16.3%)이라는 이유가 주를 이었다. 시간선택제 일자리에 대한 수요는 분명히 있고, 특히 정부가 공을 들인 지난 1년간 더 늘었다는 분석이다.
안주엽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워낙 비정규직 문제가 만연한 상황에서 정부가 시간선택제 일자리 정책을 발표해 노동계가 반발하지만, 근무형태의 폭이 넓혀 다양한 사람들에게 취업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해외에서는 진보적인 노동정책으로 꼽힌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시간선택제 일자리 활성화 추진계획을 발표하며 ‘주 15~30시간 근무하는 정규직, 최저임금 이상 임금, 4대보험 가입’ 등 근로조건을 충족하는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문제는 정부가 공언한 것과 같은 양질의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극히 적다는 점이다. 작년 11월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1만개 만들겠다며 채용박람회를 열었던 10대 기업은 7월 현재 6,500명을 채용하는 데 그쳤다.
정부는 시간선택제 일자리에 관한 공식 통계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통계청 경제활동부가조사를 통해 규모를 간접적으로 추정할 수 있는데, 상용직 시간제 근로자는 3월 기준 전체 시간제 근로자 191만7,000명의 9.4%(18만1,000명)에 불과하다. 바꿔 말하면 시간제 일자리의 10명 중 9명이 고용기간 1년 미만의 단기 일자리일뿐, 상용직으로 시간제 일자리를 채용하는 기업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정부의 기대와 사업체가 제시하는 일자리의 괴리도 크다. 고용부 일자리 포털사이트 워크넷에 올라온 시간제 일자리 3,648개를 분석한 결과, 고용기간 1년 이상ㆍ최저임금 130% 이상인 ‘양질의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23.4%(854개)에 그쳤다. 그나마 대부분이 음식서비스업(664건 77.75%)과 같은 단순노동이었다. 시간선택제 일자리의 평균 시급은 7,420원, 월급은 127만9,000원에 불과했다.
시간제 일자리 확산이 더딘 가장 큰 이유는 기업이 노무관리 비용증가 때문에 도입을 꺼리고 있다는 점이다. 5월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기업체 205개를 설문조사한 결과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도입하지 않겠다는 기업이 55.6%로 활용의사가 있다는 기업(44.4%)보다 많았다. 적합직무가 없다(45.6%)는 게 표면적인 이유이지만, 실상은 노무 관리 비용 증가와 인력 운용의 어려움 때문이다. 허문종 우리금융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보고서 ‘시간제 일자리 현황과 시사점’에서 4시간 시간제 근로자 2명의 연간 인건비는 8시간 전일제 근로자 1명 인건비보다 약 1.5배 높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비용증가를 충당할 만한 고부가가치 기업과 고숙련 근로자의 시간선택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만드는 데 상당한 기간이 소요되는 만큼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공공기관이 먼저 시간제 일자리에 적합한 새로운 직무형태를 개발하고 시도해야 한다”며 “전 업종에 시간제 모델을 적용하고 민간기업의 비용이 급격하게 상승하지 않도록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안하고 ‘시간제 근로 보호법’을 마련해 점진적으로 시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김하나 인턴기자 (서울여대 국어국문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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