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적(structural)’이란 단어를 자주 쓰게 된 것이 대학시절인 1980년대 초반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구조기능주의, 구조이론, 구조문법 등에 사용됐던 것으로 쓰임새가 많고 편리한 단어였다. 뭔가 단순히 평면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개념이나 논쟁도 ‘구조적’이라는 것을 붙이면 쉽게 정리되곤 했다. 우리 경제의 최대 현안인 성장동력의 문제도 구조적이라는 단어가 어울린다. 그만큼 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7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지나오면서 저성장이나 성장둔화 같은 퇴행적인 용어에 익숙해졌다. 1970~1980년대에 10%를 넘나들던 경제성장률이 최근에는 고작 2~3% 수준으로 떨어졌고, 청년실업, 저출산, 고령화 등의 고질적 문제는 미래에 대한 전망을 어둡게 한다.
한국은행의 최근 발표도 같은 맥락이다. 2ㆍ4분기 경제성장률이 0.5%에 그쳤다. 명목국내총생산(GDP)은 전기 대비 0.4% 줄어 글로벌 위기의 정점에 있던 2008년 4ㆍ4분기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더 큰 문제는 당분간 상황이 나아질 것이 없다는 점이다. 한 민간경제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경기회복세는 빨라야 내년 하반기라는 응답이 많았다.
대외적 여건도 간단치 않다. 우리의 최대 수출시장인 중국에서 소비와 투자가 줄면서 최근 3개월간 수출이 감소세를 나타냈다. 게다가 중국은 수입에 의존하던 석유화학 IT 기계 등의 산업을 내수로 확충하고 있다. 이는 향후 우리의 대중국 수출물량이 대폭 줄 것임을 암시한다. 또 원화가 강세를 띠고, 엔화는 약세를 지속하고 있다. 여기에 유럽중앙은행(ECB)까지 금리를 전격 인하하면서 원화는 엔화와 유로화에 협공을 당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수출경쟁력이 그만큼 떨어진다는 의미다.
최경환 경제팀 출범 이후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은 들썩이고 있으나 실물경기는 여전히 냉랭하다. 소득증대 방안이 사실상 없으니 내수진작 효과는 나타나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전세값이 오르는 등 부동산대책의 역효과가 감지된다. 또 무리하게 집을 구매하는 경우가 늘면서 가계부채에 대한 경고음도 나온다. 소득이 늘지 않는 상태에서 빚만 느는 것이다. 성장엔진은 식고 부동산 열기만 뜨거워지는 것이 최악의 시나리오다.
그렇다면 성장동력은 회복이 불가능한 것인가. 정부는 물론, 학계와 재계 등에서 성장동력 회복이 한국경제의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것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성장둔화의 원인과 극복 방안에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이태정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공저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의 변화에서 이 문제에 대해 심도 있게 분석했다. 성장동력 저하가 자본의 한계생산성 체감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면 공장을 짓고 생산설비를 확장하는 투자보다 기술개발과 생산성 증대를 위한 투자와 구조개혁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지나친 부와 시장점유율 집중에 의해 중산층이 와해되고 내수시장이 붕괴하는 등 시장실패가 원인이라면 해법은 달라져야 한다. 시장의 독과점을 강력히 규제하고 공정한 경쟁을 통해 중산층을 두텁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자는 성장중심, 후자는 분배정책에 무게를 둔 것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의 의견은 절충적이다. 그는 동반성장을 다룬 공저 함께 멀리 가자에서 “21세기 성장동력은 과거와 같은 요소투입이 아니라 혁신과 지식의 창출, 그리고 이를 부가가치로 연결시키는 산업생태계 구축에서 나온다”며 “내수와 수출이 균형적으로 성장을 견인하고 수출의 과실이 내수로 연결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결국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문제는 지금처럼 일시적이고 단순한 경기부양책으로 해결할 수 없다. 구조적 접근과 변화가 필요하다는 결론이지만 지금까지 정부가 보여준 행태로 볼 때 감당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제 ‘에너지 신산업 대토론회’에 참석해 “첫째는 시장으로, 둘째는 미래로, 셋째는 세계로’라는 구호를 제안했다. 시장은 내수진작, 미래는 기술혁신, 세계는 수출강화라는 대입이 가능하겠다. 그런데 구호는 아름답지만 왠지 공허한 느낌이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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