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 간첩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탈북자에게 또 무죄가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는 어제 ‘북한 보위사령부 직파간첩 사건’ 피고인 홍모(41)씨에게 “핵심 증거인 자백진술은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아 증거능력이 없고, 간접ㆍ정황 증거들만으로는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국가정보원 합동신문센터의 조사는 물론 검찰 수사 과정의 위법성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1심 무죄 선고를 뒤집기 위해 증거까지 조작했던 ‘서울시공무원 간첩 사건’에서 드러난 국정원과 검찰의 불법적이고 반인권적인 수사관행이 거듭 확인된 것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합신센터는 지난해 8월 홍씨를 상대로 탈북 경위 등을 조사하던 중 간첩 혐의 제보를 받았다. 이후 홍씨는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지만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진술거부권 및 변호인조력권을 고지 받지 못했다. 따라서 홍씨의 자백진술서는 ‘위법수집증거’로 증거능력이 없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특히 홍씨를 135일간 독방에 가둔 것은 ‘영장 없이 이뤄진 불법구금’이자 ‘그 자체로 고문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국정원과 검찰은 그 동안 합신센터의 조사가 북한이탈주민보호법상 임시보호처분이어서 형소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재판부는 탈북 경위 등 통상적인 조사를 넘어 구체적인 범죄 혐의를 조사할 경우 당연히 형소법을 따라야 한다고 못 박았다.
재판부는 검찰의 피의자신문조서 역시 절차상 하자가 드러나 증거능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2007년 개정된 형소법에는 진술거부권 등의 고지내용과 기재 방식을 상세히 규정하고 있는데, 검찰이 그 내용을 전혀 알려주지 않거나 불분명하게 고지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홍씨는 구속영장실질심사 당일 10여분간 국선변호인과 면담한 것 외에는 법률적 도움을 전혀 받지 못했고, 이후 변호사의 조력을 받게 된 뒤에는 공소사실을 일관되게 부인했다. 재판부는 홍씨가 낸 반성문도 변호인 도움 없이 심리적으로 위축된 상태에서 작성된 것이어서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판결에 불복해 즉각 항소하겠다고 밝혔지만 사건의 실체에 관한 판단에 앞서 증거능력 자체를 인정하지 않은 1심 판결을 뒤집기는 어려워 보인다.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간첩행위 적발과 처벌도 헌법이 규정한 기본권 보장의 예외가 될 수 없다. 간첩 증거조작 사건으로 이미 신뢰를 잃은 검찰과 국정원은 이번 판결을 불법적이고 반인권적인 간첩 수사관행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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