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의 무기는 연대다. 홀로 강자와 맞서진 못한다. 하지만 현실은 거꾸로다. 동지끼리 짓밟기 일쑤다. 적에게보다 더 모진 적의들이 부딪힌다. 혁명이 무망해진 시대. 연민도 없다.
“약한 자를 돕는다니. 이 낡고 흔해 빠진 말이 왜 이렇게 낯설고, 아름다운 걸까. 약자들의 따스한 연대를 누구나가 말하던 시절이 있었다. (…) 이제는 누구도 스스로를 약자로 규정하거나 선언하지 않는다. 도리어 나의 ‘약자-됨’은 결단코 은폐되어야 할 존재의 치부다. (…) 그러므로, ‘갑-되기’가 시대정신인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충격적인 사건들의 대부분은 약자가 아님을 입증하기 위해 약자를 혐오하는 약자들에 의해 자행된다. 윤일병을 죽음에 이르게 한 28사단의 장병들, 단식 중인 세월호 유가족 보라며 닭다리를 뜯고 있는 노인들, 한때의 피해자가 가장 극렬한 가해자로 돌변하는 왕따와 학교 폭력, 지역차별과 여성비하를 토사물처럼 쏟아놓는 극우 청년단체…. ‘나는 너보다 나이가 많다’, ‘나는 너처럼 비명에 자식을 잃지 않았다’, ‘나는 이제 친구가 있다’, ‘나는 그 지역 출신이 아니다’, ‘나는 여성이 아니다’가 이들에겐 일말의 권력, 알량한 권세가 된다. 모두가 갑이 되길 원하고, 기적적으로 모두가 갑이 되는 곳. 아이부터 어른까지, 세상의 모든 사람이 갑이어서 슬픈 땅. 강한 것은 아름답고, 약한 것은 추하다는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를 우리는 너무도 성실하게 내면화했다. 약한 것은 딱하고 가여운 것이 아니라 못나고 혐오스러운 것이어서, 이제 약자조차도 약자의 마인드 따위는 필사적으로 가지려 하지 않는다. (…) 내가 약자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제물을 찾아 물고 물리는, 갑의 표식을 이마에 붙인 을들의 아귀다툼이 벌어지는 지옥이 바로 여기다. (…) ‘얕보이면 죽는다’는 공포, ‘당하는 게 죄인’이라는 좌절이 우리 내면에서 작동하고 있는 한, 이 그악스런 비극은 종식될 수 없다. 미시권력의 끊임없는 비교우위를 통해 약자가 약자를 혐오하는 동안, 강자들의 거악은 쉬이 잊혀졌다. 강자들의 태평성대를 만들어준 건 그러니까 바로 우리 약자들이다. (…) 강한 것은 아름답고, 약한 것은 추한 것이 아니다. 아름다운 것이 아름다운 것이고, 추한 것이 추한 것이다. 그게 누구든, 약자를 돕는 자가 아름답고, 약자를 혐오하는 자가 추한 것이다.”
-약자가 약자를 혐오할 때(한국일보 ‘36.5°’ㆍ박선영 문화부 기자) ☞ 전문 보기
“증오범죄는 인종, 종교, 출신 지역, 성적 지향, 신체 장애 등에 대한 편견에 기반한 범죄다. 대체로 사회적 약자를 겨냥한다. 그런데 가해자 역시 사회 전체에서 보면 약자인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약자의 약자에 대한 공격’인 셈인데, 더 정확히 말하면 ‘약자가 강자의 시선으로 다른 약자를 내려다보며 가하는 폭력’이다. 이때의 증오가 ‘혐오’나 ‘경멸’ 같은 감정과 잘 구별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00년대 후반부터 서울 종로에서 계속 발생하는 동성애자를 향한 ‘묻지마 폭력’은 전형적인 증오범죄였다. 또한 일간베스트저장소의 호남혐오 발언, 여성혐오 발언들은 ‘증오표현’의 일종이다. (…) 학교나 직장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집단 따돌림도 넓은 의미에서 증오범죄의 일종이다. 윤 일병 사건, 임 병장 사건 역시 군대 내의 우발적 사고가 아니라 구조적 요인을 지닌 증오범죄라고 봐야 한다. 이 끔찍한 비극을 추동했던 동기는 명백하게도 혐오, 증오, 모멸과 같은 감정들이었다. 물론 구조가 어떻든 가해자의 책임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군대라는 ‘폭력의 맷돌’에 끼인 약자들 사이에서 가장 잔인한 형태의 폭력이 이렇듯 빈번히 출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 승자독식이 철저히 관철되는 한편 패자부활이 어지간해선 용납되지 않을 때, 낙오에 대한 공포는 팽팽히 부풀어 오를 수밖에 없다. 그 공포는 약자와 자신을 구분하려는 강한 욕망을 만들어낸다. 가장 쉬운 방법은 바로 증오하기, 혐오하기다. 해서 증오범죄는 줄어들기 어렵다. (…) 증오의 낙수효과는 왜 이렇게 잘 작동하는가? 이 물음에 대한 포괄적 대답은 놀랍게도 ‘경제의 낙수효과는 왜 작동하지 않는가?’의 그것과 일치한다. 답은 ‘극단적 불평등’이다.”
-증오의 낙수효과(8월 12일자 한겨레 ‘야! 한국사회’ㆍ박권일 칼럼니스트) ☞ 전문 보기
짐승의 시간이다. 자식 잃은 부모한테 따라 죽으라 악다구니 쓰는 노인들. 이 약자들을 찢어놓은 이가 누군가. 몰(沒)도덕 살풍경이 보기 싫단 우파지 고참 기자의 신경질이 얄궂다.
“2014년 9월 3일 저녁 6시.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동상 앞. 세월호 유족 농성장에는 수백 명이 모여 있었다. 한쪽에서는 진상규명과 세월호특별법 처리를 촉구하는 집회가, 다른 쪽에서는 유족을 지지하는 동조단식이 벌어지고 있었다. (…) 경광봉을 들고 주변을 순찰하던 의경이 요즘 분위기를 전했다. “한 열흘 전부터 광화문광장은 요지경이다. 갑자기 수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출현한다. 자리를 깔아놓고 맛있게 치킨 한 마리를 다 먹고 자리를 뜬다. (…)” 광화문광장에서 철수한 ‘치킨 사내’는 네거리를 건너 청계광장 쪽으로 향했다. 보수단체 회원들이 농성을 벌이는 곳이었다. (…) 사내는 동료들에게 뭔가를 열심히 설명했다. (…) 저녁 7시. 점잖게 생긴 보수단체 회원을 청계광장에서 만났다. ‘김진요(김영오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 팻말을 목에 건 그는 유족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 김영오씨(세월호 유족)가 40일 넘게 단식을 했다는데 말이 되나. (…) 특히 세월호 유족들이 우리 대통령을 욕보이는 걸 더는 두고 볼 수 없다. (…)” 유족이 광화문광장에서 청와대로 가겠다며 삼보일배에 나선 날, 어버이연합은 청계광장에서 규탄집회를 열었다. (…) 한 보수 학생단체는 김영오씨의 단식농성에 맞서 ‘폭식투쟁’을 예고했다가 김씨가 단식을 중단하면서 취소하기도 했다. (…) 박근혜 대통령 동생(박근령)의 남편 신동욱씨가 ‘김영오 허구’를 입증하기 위한 실험단식에 돌입한다. 청계천(나중에 장소 옮김)에 진을 치고 물·소금만 먹고 얼마나 버티는지 ‘생체’실험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 밤 10시. 청계천 주변의 노천카페에서 한 무리의 직장인을 만났다. 광화문에 직장이 있는 40대 여성은 한 달 사이의 변화를 이렇게 전했다. “(…) 유족 요구에 무리한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자식을 잃은 부모들인데. 최소한의 예의라는 게 있지 않나. 조롱을 참지 못하는 사회가 돼 버렸다.” 밤 11시30분. 청계광장 나라의 불빛은 사라졌고 광화문광장 나라에서는 희미한 불빛 아래 단식농성이 이어지고 있었다. 인근 청계천 변은 늦은 시간에도 초가을의 정취를 느끼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하지만 이들에게 광화문광장의 탄식은 들리지 않았다. 한가위 보름달이 여무는 밤에 이순신장군만이 ‘두 나라’ 사이를 흐르는, 검고 푸른 울돌목을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광화문광장 나라, 청계광장 나라(중앙일보 ‘이규연의 시시각각’ㆍ논설위원) ☞ 전문 보기
“빗발이 굵던 3일 오후 3시. 서울 광화문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50여 명이 비를 맞으며 집회를 열고 있었다. 이들은 한 케이블방송 설치와 보수·철거를 담당해온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해고를 당한 뒤 두 달 넘게 거리 농성을 벌이고 있다. (…) 서울 잔디 광장의 혼잡은 더했다. 한쪽엔 천막 장터가, 다른 쪽엔 세월호 합동분향소가 있었다. (…) 광장 한가운데 깃대에 묶여 젖어 엉켜 있는 노란 리본들이 눈에 거슬렸다. 시 청사 양옆은 1인 시위 팻말이 차지하고 있었다. (…) 그들을 지나쳐 청계천이 시작되는 청계광장으로 들어서니 ‘세월호 특별법을 통과시키라’는 정의당의 대형 플래카드가 보였다. 바로 옆 동아일보사 앞에는 ‘세월호법 반대’를 내걸고 시위를 벌이는 보수단체 천막이 있었다. 이순신 동상이 있는 광화문광장에는 세월호 유가족들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릴레이 단식과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 사진과 플래카드, 벽보들을 살피며 세종대왕상을 향해 천천히 가로질러 가자 웬 남자가 “빨리 안 가고 뭐 합니까” 소리를 지른다. 그의 말과 표정에서 피로감과 적대감이 확 끼쳐왔다. 덜컥 겁이 나 유족들을 만나려는 계획은 접기로 했다. 광장 건너 교보빌딩 앞에는 경찰차들이 방벽처럼 길게 서 있었다. (…) 어느덧 익숙한 풍경이 돼 별 생각 없이 살다가 새삼 광화문 주변을 둘러보겠다고 마음먹은 건 근처 직장에 다니는 한 지인의 말 때문이었다. “요즘 광화문은 ‘한국이 경찰국가 같다’는 느낌을 준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 한복판이 각종 시위와 플래카드로 덮여 있는 모습을 외국인들은 어떻게 느낄까.” (…) 다시 회사로 들어오는 마음이 복잡했다. ‘대한민국은 지금 아프다’라는 새삼스러운 자각부터, 왜 우리는 갈등을 이런 식으로 길거리에서 풀어야 하나, 정치와 국회는 뭘 하고 있나, 차라리 외국인들 눈에 띄지 않는 특정 지역을 따로 정해 불만을 표출하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천막촌이 되어버린 광화문(동아일보 ‘광화문에서’ㆍ허문명 오피니언팀장) ☞ 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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