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머물 때다. 세븐레이크스라고도 부르는 뉴욕 인근 해리먼주립공원으로 바람을 쐬러 자주 다녔다. 그곳의 잘 갖춰진 트레일을 따라 산행을 하며 풍요로운 미국의 자연을 부러워했다. 미국의 등산로는 좀체 사람을 만나기 힘들 정도로 한적하다. 트레일 표식을 따라 걸으며 혼자만의 사색을 하기에 좋다.
어느 날 코스를 바꿔 새로운 길로 접어들었을 때 머리 위까지 치솟은 배낭을 멘 하이커들을 만났다. 덥수룩한 수염과 땀에 절은 옷차림이 범상치 않았다. 그들은 잠깐의 눈 인사만 나누곤 성큼성큼 제 길을 향했다. 그들이 걷는 길엔 명함만한 크기의 하얀 직사각형 표식이 이어졌다. 바로 애팔래치안 트레일이다. 미국 동부의 등줄기에 해당하는 애팔래치아 산맥으로 난 3,500여㎞의 트레일이다. 장거리 등산 코스로 미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녔다. 해발 1,500m가 넘는 봉우리만 350개를 지나야 하고 종주 기간만 최소 5개월이 소요되지만 미 동부의 수려한 장관을 관통하는 등산로여서 하이커들에겐 ‘꿈의 트레일’로 불린다.
애팔래치안 트레일 종주에 도전하는 이가 한 해 2,000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냥 쉽게 걷는 길이 아니다. 필요한 모든 것을 짊어지고 걸어야 한다. 몇 날을 보급 없이 야외에서 자야 하고 스스로 음식을 해먹어야 한다. ‘엘리베이터가 아래로 내려갈 때 끌어당기는 힘과 같은 물리작용을 하는’ 18㎏ 이상의 배낭 하중을 이겨내면서 말이다.
이 도전자 중 한 명이 발랄하고 유쾌한 글쟁이 빌 브라이슨이다. ‘나를 부르는 숲’은 등산 초보에다 배불뚝이 중년인 빌 브라이슨이 그보다 더 막무가내인 뚱보 친구 카츠와 겁 없이 애팔래치안 트레일에 도전한 이야기다.
첫 몇 걸음 걷자마자 그들은 후회했고 그만둘까 고민을 했다. 그런 그를 붙잡은 것은 원시의 숲이 주는 위대함이다. 그는 숲에서 아무도 만나지 못하는 완전무결한 고독을 맛보았고, 더 이상 어떤 자극이나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투쟁의 자리에서 멀리 떨어진’ 고요한 권태의 시간과 장소에 놓인 존재임을 느꼈다.
책은 단순히 저자의 발자국만을 좇지 않는다. 그의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미국 국립공원의 허술한 관리를 꾸짖고 애팔래치아 자락의 대자연이 어떻게 형성됐고 보존됐으며 인간의 개발 욕구로부터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쉽게 설명하며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매년 애팔래치안 트레일 종주에 도전하는 이들 중 4분의 1 만이 완주에 성공한다고 한다. 저자와 그의 친구 카츠도 완주는 하지 못했다. 조지아, 테네시 주 구간을 걷고는 버지니아 구간으로 건너뛰었고 펜실베이니아의 짧은 구간을 맛보곤 다시 껑충 뛰어 뉴잉글랜드 구간을 걸었다. 그들이 실제 걸은 거리는 1,392㎞. 트레일 전체의 39.5% 거리다.
그들은 트레일 종착점인 캐터딘을 바로 앞에 두고 길을 잃고 죽음의 고비를 넘기는 최악의 상황과 맞닥뜨린 뒤 산에서 내려오기로 한다. “물론 아쉽다. 어쨌든 많은 경험을 축적했다. 삼림과 자연 그리고 숲의 온화한 힘에 대해 깊은 존경을 느꼈다. 전에는 있는 줄 몰랐던 인내심과 용기도 발견했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아직도 모르고 있는 아메리카를 발견했다. 친구를 얻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왔다.” 긴 산행을 마무리한 심정을 저자는 이렇게 표현했다.
그는 아쉬움 속에서도 애팔래치안 트레일을 걸었다는 자부심을 얻었다. 하지만 난 저자가 찬사한 그 길을 바로 곁에 두고도, 모처럼의 여유 있는 시간이 있었음에도 종주에 도전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 일생의 기회를 놓친 아쉬움은 지금까지도 짙게 남아있다. 빌 브라이슨의 재기 발랄한 글이 부럽고 그가 걸었고 내가 잠시 스쳤던 애팔래치아 원시의 숲이 그립다.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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