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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를 둘러싼 세 여자의 '사랑과 전쟁' 치밀하게 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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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를 둘러싼 세 여자의 '사랑과 전쟁' 치밀하게 묘사

입력
2014.09.05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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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의 위안

랜디 수전 마이어스 지음ㆍ이창식 옮김

RHK 발행ㆍ512쪽ㆍ1만4,000원

줄거리로 간추리자면 드라마 ‘사랑과 전쟁’과 크게 다를 것도 없다. 하지만 여성의 삶에 대한 깊은 통찰, 치밀하고 아름다운 심리묘사, 긴장과 이완을 능숙하게 반복하는 구성적 리듬감이 빼어나다. 한국문학에 취약한 대중소설의 바람직한 모델이자 추석 연휴에 추천할 만한 ‘페이지터너’다.

랜디 수전 마이어스 ⓒ Lynn Wayne
랜디 수전 마이어스 ⓒ Lynn Wayne

미국 소설가 랜디 수전 마이어스(사진)의 두 번째 소설 ‘거짓말의 위안’은 한 남자를 중심으로 연결된 각기 다른 세 여성의 삶을 병렬식으로 펼쳐 보이며 결혼과 양육이라는 여성적 삶의 핵심 테마를 다룬다. 보스턴을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의 중심서사는 젊고 매력적인 사회학과 교수 네이선과 대학을 갓 졸업한 그의 제자 티아가 불륜에 빠지는 것에서 잉태된다.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 얻은 행복은 대가를 요구했다. 네이선과 첫 키스를 나눈 순간부터 티아는 그것을 예감했다. 그와 사랑에 빠져 보낸 한 해 내내 그녀는 벌이 내리길 기다렸고, 실제로 어떤 결말이 다가오든 감내할 수밖에 없다고 믿었다.” 소설의 첫 문단이다.

사건은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임신 사실을 고백하는 티아에게 ‘처리’를 요구하며 떠나버리는 네이선과 그것을 마지막으로 네이선에게 버림받은 티아의 비참한 심경이 첫 장면에서 그려지다가 한 행의 결행을 두고 입양을 진행 중인 임신 6개월의 티아가 등장한다. 2장에서는 뷰티업계의 거물로 성공하는 아름답고 세련된 네이선의 아내 줄리엣이 남편으로부터 불륜을 저질렀다는 참혹한 고백을 듣고, 3장에서는 성공한 금융가이지만 불임인 남편 때문에 아이 없이 살아가는 소아암 병리학자 캐롤라인이 등장해 남편에게 입양을 제안 받는다. 소설은 아이를 떠나 보낸 후 은둔자처럼 살아가는 티아와 티아의 아이를 입양하는 캐롤라인 부부, 가까스로 불륜의 상처를 다독이며 살아가는 줄리엣이 티아가 입양 5년 후 네이선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파국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기까지를 질주하는 슬픔의 박동으로 내처 그려낸다.

작가는 진부한 사건과 갈등구조에 실감을 부여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인물의 개성이 펄떡거리고, 뻔한 상황에서도 분노와 슬픔이 매 장면 절박하다. 아내를 사로잡은 여자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확인하기 위해 몰래 길을 나선 성공한 여성 사업가 줄리엣은 “살로메처럼 남편 위로 미끄러져 올라갔을 그 여자의 야들야들한 몸”을 훔쳐보며 절망하고, 학문과 일을 너무나 사랑하는 의사 아내 캐롤라인은 입양한 딸을 위해 엄마 역할에만 집중해주기 바라는 남편과 아이에게 자신을 온전히 내던지지 못하며 고독에 함몰된다. 아픈 아이들을 낫게 하기 위해서는 뭐든 할 수 있지만 입양한 딸과 온종일 인형놀이를 하고 있으면 미쳐버릴 것 같은 자신을 용서하기가 힘들다.

가질 수도, 가져서도 안 되는 것을 욕망한 티아가 끝내 네이선을 잊지 못한 채 “가끔 자신의 인생을 네이선이 전부 마셔버린 것처럼 느”끼고 “그래서 다시는 그 잔을 채울 수 없을 것처럼 생각”하며 외로움을 자처할 때는 인간 감정의 아둔함은 속수무책임을 새삼스레 확인한다.

가짜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끝내 거짓말의 위안에 매달리던 세 여인은 결국 쓰라린 진실을 받아들임으로써 화해에 도달한다. 자기 자신과도, 지옥일 뿐이었던 타자들과도. 여자로 사는 건 그렇게나 어렵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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