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닉스 전환 계획 일사천리 추진, 李 "IBM서 할인" 검토 요청에도
이사회에선 원안대로 통과, 내부 감사 "왜곡에 지주사 관여"
국민은행은 내년 7월 한국IBM과의 주 전산기 시스템 계약 종료를 앞두고 2012년부터 기종 교체 여부를 검토해 왔다. 작년 여름 외부 자문을 거쳐 주 전산기를 유닉스 시스템으로 바꾸기로 하고 11월에는 이건호 행장도 참여한 경영협의회에서 이를 승인했다.
유닉스 전환 계획은 곧바로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이사회에 보고됐고, 은행 IT 부서의 시험 테스트를 거쳐 올 4월 이사회에 정식 안건으로 올리기로 했다. 일사천리의 과정이 틀어지기 시작한 건, 이사회에 앞서 임시 운영위원회가 열린 4월 14일 IBM 측이 이 행장에게 애초 협상가격보다 훨씬 낮은 1,500억원대의 할인을 제안하는 이메일을 보내면서부터. 2,000억원대였던 유닉스 전환 계획을 바꿀 수도 있는 제안이었다.
이 행장은 이 이메일을 윤웅원 KB금융 부사장(CFO), 김재열 KB금융 최고정보책임자(CIO), 정병기 은행 상임감사에게 보내 검토를 요청했지만 4월 24일 이사회에서 유닉스 전환 계획은 사외이사들을 중심으로 원안대로 통과됐다.
이사회 직후 정 감사는 즉각 감사에 착수, ▦전산기 교체 안건 보고서에 유닉스 시스템의 비용과 잠재 리스크 요인을 의도적으로 축소ㆍ누락한 정황이 발견됐으며 ▦이런 자료 왜곡 과정에 지주사의 깊은 관여가 있었다고 결론 내렸다.
감사 결과를 보고받은 이 행장은 5월 19일 긴급 이사회를 소집, 감사결과 보고서를 채택하려 했으나 사외이사 6명의 반발로 무산됐고 이 행장은 이를 금융감독원에 주요 경영사항으로 보고했다. 금감원이 이례적으로 당일 검사역을 파견해 특별검사에 착수하면서 내부갈등이 외부로 불거지게 된 것이다.
당초 임영록 회장, 이 행장에 대한 금감원의 중징계 건의가 지난달 제재심의위원회에서 경징계로 감면된 것은 두 사람이 감독 및 내부통제에 부주의했지만 사태에 직접 개입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간접 책임만 인정했기 때문. 하지만 4일 최수현 금감원장은 이들에게 다시 중징계를 통보했다.
실제 이날 공개된 금감원 검사 결과를 보면, 지주와 은행 실무자들이 주 전산기 교체 검토를 위한 외부 컨설팅보고서 작성자에게 유닉스의 리스크는 축소하고 IBM의 유리한 내용은 삭제하도록 요구했다. 이런 왜곡된 보고서를 토대로 작년 10월말 운영위원회에서 주 전산기 기종을 유닉스로 교체할 것을 결정했다. 더구나 유닉스 전환 계획이 통과된 4월 24일 이사회에는 유닉스 교체 시 안전성 검증을 전혀 하지 않은 채 성능검증 결과가 문제가 없다는 허위 사실이 보고됐고 심지어 유닉스 전환에 소요되는 비용도 1,000억원 이상 축소 보고됐다.
금감원은 임 회장에 대해 “국민은행 주 전산기 전환사업과 그에 따른 리스크를 수차례 보고 받았으면서도 감독의무 이행을 태만히 했고 사업을 강행 추진코자 자회사 임원인사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책임을 물었다. 이 행장도 “작년 7월 취임 이후 감독자의 위치에서 주전산기 전환사업에 대해 11차례 보고를 받았지만 감독의무 이행을 태만히 했다”는 게 중징계 사유가 됐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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