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록 회장·이건호 행장 금감원서 중징계 결정
고질적 낙하산 인사가 KB사태의 근본 원인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이 4일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 이건호 국민은행장에게 은행 주 전산기 교체 과정의 파행에 대한 책임을 물어 중징계(문책 경고)를 통보했다. 지난 달 21일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제재심)에서 두 사람에게 경징계를 결정한 것을 보름 만에 뒤집은 것이다. 이 행장이 즉각 사의를 밝힌 반면 임 회장은 사퇴를 거부하면서 ‘KB금융 사태’는 또 다시 매듭을 짓지 못한 채 새 국면을 맞게 됐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을 고질적인 금융권 낙하산 인사 관행에서 찾는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실세를 등에 업고 내려오는 최고경영자(CEO)들이 서로 존재감을 앞세우고 자리 보전에 몰두하면서 조직 전체의 갈등과 불화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KB금융의 지난 역사는 이를 고스란히 증명한다. 100% 민간 회사임에도 역대 지주 회장이었던 황영기, 어윤대, 임영록 회장은 모두 낙하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지주 내 최대 자회사인 은행장도 마찬가지. 강정원, 민병덕, 이건호 행장 역시 나름의 영역을 주장하면서 수시로 회장과 갈등을 빚었다.
실력과 조직으로부터의 신뢰보다 로비가 CEO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지고 서로 다른 후원자와 연줄을 가진 수장들이 다투기 시작하면 조직 내에 줄 서기가 만연할 수밖에 없다. 상식과 논리는 자취를 감춘다.
이번에도 임 회장은 은행의 주 전산기 교체를 자기 뜻대로 관철시키기 위해 임원 인사에 부당 개입했고 이 행장은 이를 감독당국, 검찰 고발로 끌고가 사태를 더욱 키웠다는 게 금감원의 결론이다. 모두가 평판을 생명으로 하는 금융사에 치명적인 행위다. 그 사이 2007년 3조원에 육박하던 국민은행의 순이익은 올 상반기 5,000억원대로 떨어지며 ‘리딩 뱅크’라는 수식어는 어느새 자취를 감췄다.
감독당국도 이런 악순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KB의 역대 수장들은 거의 예외 없이 감독당국의 제재를 받고 쫓기듯 자리에서 물러났다. 잘잘못과는 별개로, 더 힘 센 사람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당국이 무리한 조사를 벌였다는 비판이 비등했다. 이번 사태도 신용정보 유출 등 다른 검사 안건을 제치고 속전속결 조사가 이뤄지고 자문기구의 경징계 결정을 금감원장이 다시 뒤집는 등 극히 부자연스러운 과정을 거치며 ‘표적성 제재’로 비칠 여지가 다분하다.
이번 사태에서 감독당국, KB 모두가 패배자라는 지적이 비등하다. 거대 금융사가 망가지는 것에 아랑곳 않고 자리 보전을 위해 대립하던 CEO나 스스로 정한 제재 절차까지 뒤집으며 이들을 벌 준 금융당국 모두 금과옥조처럼 여기던 신뢰를 스스로 차버렸기 때문이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절대 주주가 없는 금융사 지배구조를 악용해 자기 사람을 심으려는 정치권, 그에 줄 대기 바쁜 금융인, 그 검은 고리에 해결사 역할을 하는 감독당국의 행태 모두가 요즘 그토록 대통령이 척결을 강조하는 금융 보신주의”라고 지적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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