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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언의 길 위의 이야기] 발톱을 깎는 일

입력
2014.09.04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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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말이겠지만, 우리는 세상의 모든 일을 최선을 다하거나 치열하게 할 수는 없다. 아니 그것은 불가능하다. 우리의 열정이나 재능은 한정되어 있고 시간은 언제나 부족하기 때문이다.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을 무능하거나 부도덕한 일로 간주하는 세상의 윤리는 종종 폭력적이라는 인상마저 준다. 세상 일 중에는 한눈을 팔면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예를 들면, 바나나 껍질을 벗기는 일이나 캔맥주의 뚜껑을 따는 일이 그렇다. 우리는 바나나 껍질을 벗기거나 캔맥주의 뚜껑을 따면서 TV를 볼 수도 있고 간단한 춤을 출 수도 있다. 이와는 달리, 세상 일 중에는 무서운 집중력을 발휘해야만 가능한 일이 있다. 예를 들면, 벽에 못을 박는 일이나 멈춘 벽시계의 시침을 맞추는 일 따위는 집중하지 않고서는 훌륭하게 이뤄내기 어렵다. 그런데, 한눈을 팔면서도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집중력을 갖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이상한 일이 하나 있다. 그것이 바로 발톱 깎기이다. 발톱을 깎는 일은 우습게도 한없는 권태와 함께 냉정함과 치열함을 요구한다. 발톱 깎기를 가리켜 내가 이상한 일이라고 단정하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그것이 부끄러운 일도 아니면서 자랑스러운 일도 아니고, 또는 부끄러운 일이기도 하면서 자랑스러운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게으름을 허락하면서도 집중력을 요구하는 발톱 깎기, 어쩌면 여기에 우리 삶의 태도를 암시하는 어떤 통찰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소설가

[3F1-099] 발톱 컬러네일 작업/최규성기자
[3F1-099] 발톱 컬러네일 작업/최규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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