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의견수렴 미흡… 타산지석 삼아야
원자력발전 의존도가 높고 원전을 적극 수출한다는 점에서 프랑스는 우리나라와 닮은꼴이다. 그렇다고 프랑스의 사용후핵연료 정책을 그대로 벤치마킹하기엔 문제점이 많다.
프랑스는 사용후핵연료로 돈을 번다. 다른 나라 사용후핵연료를 라 아그 지역에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재처리 시설로 가져와 부피를 확 줄여 돌려보낸다. 본국의 사용후핵연료는 재처리해 원전 연료로 다시 쓴다. 그러나 재처리를 꼭 해야 하는 건 아니다. 사용후핵연료를 식히기 위해 수조에 넣어두는 ‘임시저장’과 완전히 격리시키는 영구처분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 사이 별도 공간에 장기간 보관하는 ‘중간저장’이나 재처리는 선택이다.
또 재처리가 가능한 원전은 경수로뿐이다. 프랑스 원전은 모두 경수로지만, 우리나라는 경수로와 중수로가 다 있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한미원자력협정 때문에 플루토늄을 처리할 수 없다. 사용후핵연료에서 플루토늄을 핵분열생성물과 함께 쓰레기로 남기고 우라늄만 뽑아 다시 쓰는 ‘재활용’(파이로 프로세싱) 방식을 연구하고 있긴 하지만, 이렇게 얻은 연료는 경수로나 중수로에서 사용 못하기 때문에 다른 유형의 원전인 고속증식로가 필요하다. 영구처분 기술도 없다. 프랑스 기술을 들여온다 해도 우리 지질 특성에 맞을지 알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2016년이면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공간은 포화상태가 된다. 연료 간 간격을 절반 가까이 줄인다 해도 2024년이면 다시 포화다. 재처리를 하든 중간저장을 하든 영구처분을 하든 결단을 늦출 수 없는 시점이다. 결국 특정 지역에 영구처분시설이 들어서야 하는 만큼 공론화가 꼭 필요하다.
프랑스 원전당국은 뷰흐 영구처분연구시설과 라 아그 재처리 시설에 대해 충분한 공론화가 이뤄졌다는 입장이다. “공식 절차에 따라 선정했고, 주민 토론회와 설명회를 지속했으며, 정보를 공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뷰흐 주민의 약 10%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했다”고 생각한다. 또 라 아그 시설은 원자력에 대해 잘 모르던 1960년대에 완공됐다. 뷰흐의 공론화는 불충분했고, 라 아그는 제대로 된 공론화를 거치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미국 역시 공론화 실패를 경험했다. 네바다주 유카마운틴에 영구처분시설을 만들기 위해 20년에 걸쳐 땅도 파고 실증설비까지 만들었지만, 환경단체 등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백지화했다. 민간 발전사들은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오바마 정부는 꼼짝 없이 발전사들의 사용후핵연료 관리 비용을 대주고 있다.
지난해 10월 출범한 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가 프랑스나 미국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일반 국민의 의견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조성경(명지대 교수) 공론화위 대변인은 “지역이 위험을 얼마나 감내할 수 있는지, 이를 다른 지역이 어떻게 분담할지 구체적인 의견을 모으는 게 공론화위의 궁극적인 역할”이라고 말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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