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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맛집의 추억

입력
2014.09.0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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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던 휴가를 제주도로 가게 되었다. 고기국수를 한번은 먹고 싶다는 생각에 맛집을 검색해 그 중에서 가장 마음이 끌리는 곳으로 향했다. 소문난 맛집에 가려고 부랴부랴 달려갔다. 작고 허름해 보이는 집 앞에 벌써 사람들이 북적인다. 길바닥에 자리를 깔고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다. 많은 사람들을 보고 드는 생각은 “ 어 여기가 진짜 맛집인가 보다.” 들어가서 물으니 한 시간은 기다려야 하고 시간이 되면 부를 것이니 기다릴지 그냥 갈지 선택하라고 한다. 우리는 당연히 기다리겠다고.

기다리는 동안 우리 뒤에서 대기하는 사람들을 보고,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도 유심히 살핀다. 어떤 사람들은 국수 맛이야 비슷할 테니 다른 곳으로 가자고 떠나기도 하고, 사진을 연신 찍으며 기다리는 순간부터 기록하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하는 사람도 보인다. 다양한 반응을 보며 기대감은 한껏 부푼다. 기다림 끝에 나온 음식을 눈으로 느끼고, 두근거리며 젓가락으로 집는다. 느끼하지만 푸근한 맛이 실망시키지 않는다. 옆자리의 아가씨는 기름지다고 투덜거렸지만 나는 “이 맛이 또 매력이야”라며 한 시간을 기다린 보람이 있다고 일행과 이야기한다.

한 여행지에서 줄 서 있는 사람들을 보고 지나가는 사람이 맛이 거의 비슷한데 왜 한 집만 기다리고 있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그 때의 대답은 “그냥 맛집이니까요.” 이후에 정말 왜 기다리고 있을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의학적 실험처럼 주변의 모든 음식점을 블라인드 테스트 해서 진짜 맛집을 고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맛이라는 것은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것도 있으니까.

왜 맛집을 다 검색해서 찾아갈까? 그리고 긴 시간을 기다릴까? 나는 오히려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라고 생각한다. 여행지에서는 시간이 많지 않다. 직장이나 집 주변이면 여기저기 가보고 내가 좋은 곳을 정하지만 여행지에서는 그럴 여유가 적다. ‘맛집’을 찾아가는 것. 의도적인 광고도 있겠지만 이제 그 정도는 골라낼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시도를 해봐서 괜찮은 평이 많으면 우선 그곳으로 선택한다. 실패하고 싶지 않고 모험하고 싶지도 않으니까. 자주 찾기 힘든 곳에서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내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리고 평균 이상이면 기억에는 맛집으로 저장된다. 여행지의 분위기와 추억들과 얽혀서 맛은 더 아련히 기억된다. 여행을 이야기할 때 같은 볼거리를 추억하고 같은 먹거리에 얽힌 그 집에 대한 기억을 공유할 수 있다. 사람들과 더 연결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나도 거기 가봤어요. 그러면서 서로의 추억이 연결되고 동질감도 느낀다. 친하지 않아도 그 곳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것이 때론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된다. 사실 맛집을 가는 매력은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있지만 추억의 공유라는 점에서 더 매력이 있다.

추억에도 스토리가 있다. 한 시간이나 기다려 가본 곳이 실망스러울 수도 있지만 그 역시 추억이 된다. 친하지 않아도 같은 곳에서 같은 장면을 보고 같은 맛을 보았다는 것은 끈끈한 정마저 느끼게 한다. 물론 남들이 관심 기울이지 않던 곳에서의 색다른 경험, 다른 사람들의 입맛에 반대할 수 있는 자유도 큰 즐거움이다.

맛집의 후광효과를 생각해본다. 에드워드 손다이크라는 심리학자는 어떤 대상에 대해 일반적으로 좋거나 나쁘다고 생각하면, 그런 일반적인 생각에 근거해서 구체적인 행동을 평가하는 경향을 후광효과라고 했다. 개인이 가진 특성이 그 사람의 다른 다양한 특성들에 대한 평가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인데, 어떻게 보면 논리적 오류이기도 하다. 남들이 다 맛있고 좋다고 하니까 실제로 좋을 확률도 많지만 기억과 추억은 더 맛있게 각색되기도 한다.

하나가 좋게 보이면 다 좋게 보이는 후광효과와는 달리 낙인효과도 있다. 부정적인 선입견으로 실제를 보지 못하고 부당하게 생각하고 대우하는 것이다. 어떤 면으로 바라 보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오늘은 맛집의 추억을 공유하면서 낙인효과보다는 후광효과로 더 좋게 기억하고 싶다.

박은진 인제대 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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