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1일 검·경의 추적을 피해 도피하다 숨진 채 발견됐던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금수원 뒷편의 청량산 자락에 묻혔다. 그러나 유 전 회장과 함께 묻힌 의혹도 여러 가지다. 세월호 침몰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한 절차가 상당부문 남았지만, 어느 하나 명확한 답을 들은 게 없다. 그가 세상을 떠난 이후엔 모두들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할 뿐이다. 세월호가 침몰한지 이제 140일이 지났다. 앞으로 풀어야 할 의혹과 숙제를 정리해봤다.
● 유병언 죽음의 미스터리
4월16일, 인천에서 출발해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군 관매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했다. 수학여행에 나선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 325명을 포함한 승객 476명 중 172명이 구조됐고 294명이 희생됐다.
4월18일,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가 유병언 전 회장으로 보인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는 과거 한강 세모유람선을 운영했고,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의 목사로 활동했다. 특히 1987년 32명이 집단 자살한 '오대양 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검찰 수사를 받은 이력이 있어 이목을 집중시켰다. (▶ 기사보기)
유 전 회장과 핵심 측근들은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자 짐을 쌌다. (▶ 기사보기 ) 이들의 신출귀몰한 도피 행각 탓에 촌극이 벌어졌다. 검찰은 번번이 유 전 회장을 놓쳤고(▶ 기사보기) 현상금은 역대 최고금액인 5억원으로 올랐다.
7월22일, 전남 순천의 한 매실밭에서 발견된 변사체가 유 전 회장으로 추정된다는 경찰의 발표가 나왔다. (▶ 기사보기) 죽은 유 전 회장을 뒤쫓는데 사력을 다한 수사기관에 질타가 쏟아졌다. (▶ 기사보기) 검경의 '정보불통'이 부실수사를 불렀다는 지적이 나왔고, 코앞에서 유 전 회장을 놓친 검찰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유 전 회장의 죽음은 많은 의문을 낳았다. (▶ 기사보기)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유 전 회장이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를 밝혀내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법곤충의학까지 동원해 사인규명을 생중계하는 바람에 전국민이 '구더기'와 자연의 신비를 배웠다.(▶ 기사보기) 하지만 타살이 아니라는 것 외에는 명확하게 밝혀진 게 없다. (▶기사보기)
● ‘몸통’ 없는데 책임은 누가 지나
유 전 회장이 언제, 어떻게, 왜 죽었는지는 미스터리로 남았지만 이는 이번 사건의 핵심이 아니다. 핵심은 진상규명이다. 그래야 책임소재를 따져 물을 수 있다.
유 전 회장이 세월호 참사에 책임이 있다는 건 상당부분 밝혀졌다. 유 전 회장은 개인 사진전시실을 만들기 위해 세월호를 증축했고, 이로 인해 세월호의 복원성에 문제가 생겼다는 점도 보고 받았다. 이는 세월호가 침몰한 결정적 원인이었다. (▶기사보기)
문제는 유 전 회장이 사망한 이후에도 횡령·배임 혐의와 측근들의 비리 혐의를 모두 밝혀낼 수 있느냐다. 현재 유 전 회장이 사망하면서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은 종결됐다. (▶ 기사보기)
검찰은 당초 유 전 회장을 검거해 거액의 추징금을 물릴 계획이었지만, 유 전 회장이 사망한 만큼 기소도 불가능하고 재산 환수 계획도 벽에 부딪혔다. (▶ 기사보기) 이를 위해선 '유병언법(범죄수익은닉 규제 및 처벌법)'이 처리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 기사보기)
자녀들과 측근들은 책임 떠넘기기에 한창이다. 검찰은 유 전 회장 계열사 임원 13명을 재판에 세웠고, 장남 대균(44)씨를 구속했다. 하지만 차남 혁기(42)씨나 문진미디어 대표인 김필배씨를 비롯한 '몸통'들은 여전히 해외 도피 중이다. 세월호 침몰의 인과관계 입증에 필요한 핵심 인물에 대한 수사는 제자리만 맴돌고 있는 셈이다. (▶ 기사보기)
측근들도 이 점을 이용하는 모양새다. 법정에선 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유 전 회장에게 책임을 떠넘기거나 김필배 전 대표가 시켜서 한 일이라는 답을 하고 있다.
● 정관계로 뻗친 로비 대상은?
세월호 참사 초기, 유 전 회장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에는 정관계 인사들의 도움이 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검찰은 유 전 회장과 측근들이 이명박 전 대통령 재임 기간에 여야 정치권이나 관계 인사들 로비에 힘을 쏟았다고 보고 수사에 초점을 맞췄다. (▶기사보기) 이는 곧 우리사회의 '관피아'에 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검찰은 세월호 선사와 선주는 물론 관련 단체에 대한 수사에도 힘쓰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 기사보기)
하지만 검찰의 수사는 더디다. 핵심인물은 사망하거나 해외에 있어서 로비의 몸통은 건드리지도 못했다. 때문에 유 전 회장이 도피 과정에서 준비한 10개의 가방 중 1번 가방에 ‘로비 리스트’가 있을 거라는 추측이 파다했다. 하지만 9월 1일 구원파 신도 자택에서 발견된 1번 가방에 기대했던 리스트는 없었다. 대신 몽블랑 만년필 30세트와 하모니카가 담겨 있었다. (▶ 기사보기) 1번 가방 찾기에 힘을 쏟았던 검찰에 다시 숙제가 생긴 셈이다.
김지현기자 hyun162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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