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와 맥주집에 들어간 건 초저녁이었다. 문을 연 지 얼마 안 된 듯 점원들은 느슨하게 영업 준비 중이었고 음악도 미처 틀어놓지 않은 상태였다. 자리를 잡고 주문을 했지만, 어둡고 휑한 홀에 마주앉아 있자니 우리조차 어쩐지 서먹해지는 기분. 맥주만 홀짝이다 평소처럼 쿵짝쿵짝 말을 주고받게 된 건 잔이 반 넘게 비었을 때부터였다. 비로소 테이블도 하나둘 채워지며 실내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역시 좀 북적북적해야 분위기가 산다니까.” 우리는 한 마음으로 잔을 부딪쳤다. 하지만 정말 8시를 넘기자 연이어 출입문에 달아놓은 종이 달랑였다. 단체손님도 들어와 건배와 브라보를 외쳤다. 네 명의 남자가 호탕하게 웃고 떠드는 옆 테이블과 우리 테이블의 간격은 한 뼘이나 될까. H가 말을 건넸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뭐라구? 뭐라구? 나는 테이블 건너로 상체를 기울이다 급기야 물컵을 엎어트리고 말았다. H가 목청을 높였다. “나가자구! 조용한 데로 옮기자구!”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화장실에 다녀오겠노라며 H가 자리를 비운 사이 나는 정신이 사나워 눈을 감았다. 와글와글와글와글. 순간 희미한 감흥이 일었다. 아, 사람의 목소리란 이런 것이구나. 겹겹 오가는 이야기 속에서 뜻은 뭉개지고 소리로만 남은 목소리들. 그 사이에서 튀는 데시벨로 들려오는 “정말?” “있잖아” “개쩔어” 같은 말은 일종의 추임새랄까 장단이랄까. 나는 와글와글 사운드의 음악을 듣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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