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비장애인 대학생들 음악교육 매뉴얼 제작 의기투합
전문가 찾아 영국까지 날아가 "비전공 학생들 실험연구 훌륭"
28일 오후 영국 사우스햄튼대 음악대학의 한 연구실. “이 내용이 진짜 비전공 학생들이 실험한 결과라구요? 훌륭합니다.” 작곡가 벤 올리버씨와 레이첼 반 베소우 등 이 대학에서 인공와우를 장착한 청각장애인이 어떻게 음악에 반응하느지 연구하는 이들이 지구 반대편에서 찾아온 한국 대학생들의 발표에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런던을 찾은 이들은 청각장애인 조민희(20) 강예인(21) 이진경(20ㆍ이상 숙명여대 2) 함석호(24ㆍ서강대 3)씨 등 청각장애 학생 4명과 김덕한(24ㆍ서강대 4) 백병석(24ㆍ고려대 4) 유현도(22ㆍ고려대 3)씨 등 비장애 학생 3명이다. 지난 2월 ‘청각장애인들의 음악 이해 매뉴얼’ 제작을 위해 의기투합한 이들은 한국장애인재활협회와 신한금융그룹이 주관하는 ‘2014 장애청년드림팀 6대륙에 도전하다’의 바디히어링팀의 일원으로 8월 21~29일 해외 전문가들을 찾아 영국 런던을 방문했다.
조씨는 세 살 때 원인 모를 고열로 청력을 거의 잃었다. 열 살 때 인공와우 이식수술을 받았지만 소리는 거의 듣지 못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조씨는 음악 듣기를 즐긴다. 인공와우 위에 두꺼운 헤드셋을 얹고 비트가 강한 음악을 듣는 그의 스마트폰에는 가요, 팝송 등 음악이 무려 1,200여곡 저장돼 있다. 음악은 조씨가 또래들과 소통하는 중요한 통로다. 조씨는 “여섯 살 때 부모님이 피아노 연주를 배우게 해서 음악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조씨처럼 청각장애인에게 음악을 즐기는 길을 열어주기 위해 이들은 2월부터 해외 논문을 찾고 전문가들의 활동 내용이 담긴 유튜브 동영상 등을 참고해 실험을 반복했다. 주제에 맞춰 생각나는 대로 악기를 두드려 연주하거나 자신이 들은 음악을 글과 그림, 율동으로 표현하며 같은 음악을 서로 어떻게 듣는지에 대해 교감했다. 유씨는 “‘듣지 못하는데 무슨 음악이냐’는 국내 일반인들의 무관심한 시선에 많은 청각장애인들이 음악을 즐길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며 “받아들이는 방식만 다를 뿐 음악은 모두에게 같다”고 말했다.
학생들을 만난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전공과 무관한 나이 어린 학생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영국을 직접 찾았다는데 놀랐고, 한국에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음악 교육시스템이 거의 갖춰져 있지 않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청각장애인 피아니스트이자 MATD(Music and the Deaf)에서 청각장애인 음악 교육을 하고 있는 데니 레인씨는 이들을 만나 “학생들이 실험해온 교수법이 기초적인 수준이지만 ‘멜로디만이 음악의 전부가 아니다’라는 우리의 교수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격려했다. 그는 “청각장애인에게도 음악은 단순히 소리가 아닌, 감정을 전달하는 예술이다. 한국 청각장애인들이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학생들을 꾸준히 돕겠다”고 말했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음악을 작곡하는 벤 올리버(Ben Oliver)씨도 “학생들의 노력이 한국 정부와 관계자들의 지원을 이끌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며 아낌없는 조언을 약속했다.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백병석씨는 “그간의 노력이 헛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며 “교육 매뉴얼을 만들고 워크숍을 개최할 때까지 도전을 멈추지 않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런던=김관진기자 spiri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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