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장마 영향 대량 부화 추정… 道, 재발 대비… 가능성은 낮아
지난달 28일부터 전남 해남군 산이면 친환경 간척 농지에 출몰해 벼를 갉아 먹는 등 농작물 피해를 입힌 수십억 마리의 곤충떼는 농촌진흥청 확인 결과 풀무치류인 것으로 밝혀졌다. 해남군과 전남도는 친환경 살충제 등을 뿌려 90% 가량 방제에 성공했다고 밝혔으나 농민들은 곤충들이 다른 곳으로 확산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올해 마른 장마로 비가 오지 않아 풀무치들이 대량으로 부화해 출몰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31일 전남 해남군에 따르면 지난달 28일부터 산이면 덕호리 일대에 0.5~4㎝ 크기의 곤충떼가 나타나 마을 인근 논 5㏊와 친환경 간척농지 20㏊를 덮쳤다. 곤충떼는 벼에 달라붙어 잎과 줄기, 수확을 앞둔 낟알 까지 갉아먹었다. 당초 메뚜기떼로 추정됐던 이 곤충들은 날개가 짧아 잘 날지 못하고, 갈색 빛깔에 다리 모양과 크기가 메뚜기와 달라 농촌진흥청에 조사 의뢰됐고, 1차 육안 조사 결과 풀무치류인 것으로 확인됐다.
해남군은 곤충 떼의 이동 경로를 차단하기 위해 29일 오후부터 긴급 방제에 나섰지만 풀무치류의 개체 수가 워낙 많은데다 번식력이 강해 방제에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피해 농경지에서는 기장과 수수 등 농작물이 친환경으로 경작되고 있어 2차 피해가 가지 않도록 친환경 살충제만 사용하면서 방제 효과가 떨어졌던 것으로 나타났다. 전남도와 해남군은 “곤충 떼 발생 지역과 인근 지역 60㏊를 대상으로 유기농 단지는 친환경 약제로, 일반농지와 수로 등에는 화학농약을 사용해 4차례 방역을 펼쳐 90% 이상 방제한 상태”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따뜻한 날씨와 비가 많이 내리지 않은 건조한 환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점, 발생 지역이 화학농약이 살포되지 않은 친환경 농지였던 점 등으로 풀무치류의 개체수가 갑작스럽게 늘어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곤충의 천적인 조류가 줄어드는 등 생태계 균형이 일시적으로 파괴됐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국립농업과학원 작물보호과의 이상계 박사는 “풀무치나 메뚜기는 5~6월, 늦어도 7월까지 1마리당 수십개의 알이 들어있는 알주머니 수십개를 땅속에 낳는다”며 “보통 비가 내려 알들이 쓸려 내려가는 경우가 많은데 올해 마른 장마로 비가 내리지 않으면서 알들이 많이 보존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삼국시대나 조선시대에도 ‘황충(蝗蟲)’피해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 걸로 봐서 건조기에 국지적으로 생태계에 변화가 생겨 나타나는 현상 같다”고 덧붙였다.
이준호 서울대 농생명공학부 교수도 “일반적으로 이런 경우는 서식환경이 좋을 때 발생한다”며 “메뚜기나 풀무치는 산란수가 워낙 많은데다 날씨가 따뜻하고 비가 많지 않은 건조한 환경일 때 부화율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해남 쪽의 특수한 환경으로 생긴 일시적 현상으로 보이며, 확률적으로 재발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고 말했다.
해남군 현장에서 곤충떼를 직접 관찰한 김기수 농촌진흥청 재해대응과 지도관은 “외래종이 아닌 토착종으로 보고 있으며 다른 지역에서 추가로 발생할 가능성이 없다고 장담할 순 없지만 풀무치의 산란은 1년에 한번이기 때문에 방제만 제대로 이뤄지면 확산될 염려는 없다”고 말했다.
전남도는 곤충떼의 추가 발생 가능성에 대비해 예찰을 강화하면서 추가 방제를 실시하고 있다. 아울러 농림축산식품부에 돌발 병해충 긴급 방제비로 3억원을 지원해 줄 것을 건의했다.
해남=박경우기자 gwpark@hk.co.kr
안아람기자 onesh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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