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는 타고나나, 길러지나
천재성 못지않게 경험 쌓아야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이 중요
한 어린이가 9살에 중학교 입학자격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1년 뒤에 고교 졸업 검정고시도 합격했다. 1년 사이에 중ㆍ고교 과정을 마쳤다는 이야기다. 이 정도면 영재를 넘어 천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대법원에서는 이걸 인정하지 않았다. “지식뿐 아니라 사회적 능력을 키우는 의무교육의 목적을 구현”하기 위해서 고교 졸업 검정고시뿐 아니라 중학교 입학자격 검정고시 합격을 취소했다. 이 어린이는 지적으론 대학교 입시에 응시할 능력이 있음을 국가 차원에서 인정했으나 초등학교 의무교육을 제대로 마치지 않았기 때문에 고교, 대학교는 물론 중학교에도 진학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에 하나 이 어린이가 자라서 우리나라에 노벨상을 안기거나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와 같이 혁신적인 제품으로 게임법칙을 바꿀 만한 기업가가 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해버린 결정을 한 것이라면 매우 큰 잘못을 저지른 꼴이 된다.
경험적으론 그럴 가능성이 매우 낮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천재소년들은 그 후 어른이 돼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왜 어렸을 때 천재적인 자질은 어른이 돼서도 지속되지 않을까? 전문가들은 한국적인 문화에서 천재성이 발휘되기는 힘들다고들 한다. 천재소년이 성인이 돼서도 천재로 남으려면 개인이 잘 해서만이 아니라 주위에서 그걸 인정하고 북돋아주고 도와줘야 하는데, 우리에게는 그런 사회ㆍ문화적 환경이 갖춰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걸 희화한 이야기로 ‘김옥균과 옥황상제’라는 조크가 있다. 이미 알려진 이야기인데, 우리나라에서 뉴튼, 아인슈타인, 에디슨, 퀴리부인이 동시에 태어나도록 김옥균이 옥황상제에게 손을 좀 썼는데, 나중에 이들이 성인이 돼서는 모두 별 볼일 없는 루저가 됐다는 것이다. 씨앗이 아무리 좋아도 토양 탓에 제대로 자라지 못했다는 것인데, 어느 정도 일리는 있지만 천재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을 ‘주위 탓’으로만 돌리기는 무리가 있다.
미국 줄리어드 음대에서는 나이가 어려 대학 입학은 불가능하지만 음악에 재질이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가르치는 영재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우리나라 한국예술종합학교도 유사한 영재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세계적인 연주가로 성장한 바이올린의 장영주, 첼리스트 장한나를 비롯, 전설적인 정경화가 이곳을 거쳐갔다. 이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토요일이면 재능을 가진 아이들이 레슨을 받으러 이곳에 모인다. 아이들 대부분 줄리어드 음대가 위치한 뉴욕에서 오지만 멀리 캘리포니아에서, 캐나다에서도 부모들이 밤새 장거리 운전을 하거나 비행기를 타고 온다. 아이들이 스스로 이 고생을 하겠는가. 유대인, 중국인, 한국인 등 전 세계에서 가장 극성맞은 부모들을 보려면 토요일에 이곳에 와보면 된다. 그런데 정작 자식들이 음악가가 되길 바라는 부모는 많지 않다. 그저 자식들이 어렸을 때 무언가 한 가지 집중해서 남다른 성취감을 얻길 바랄 뿐이다. 실제로 이 아이들이 모두 음악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나중에 보면 많은 아이들이 음대가 아닌 일반대학에 진학해 다른 분야로 진출해 있다. 공부 역시 마찬가지다. 수학 문제 푸는 능력, 시험 잘 보는 능력은 인간의 여러 능력 중 일부에 불과하다. 수학 시험점수가 좋다고 해서 이담에 수학자가 될 확률이 높아지는 것도, 발명 경시대회에서 우승했다고 해서 발명가가 될 가능성이 큰 것도 아니다. 공부 잘하는 것을 목적으로 공부한다면 잘해봤자 공부기계가 될 뿐이다.
성장기에 음악을 하거나, 공부를 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한 가지에 몰두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그러나 이것들이 인생의 목표가 될 필요는 없다. 음악을 통해, 공부를 통해, 운동을 통해, 무엇보다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한계를 지속적으로 경신하는 능력을 갖춘다면 누구나 천재가 될 수 있다. 말 뜻대로 하늘이 자신에게 내려줬으나 정작 본인은 알지 못했던 재능을 발견한 것이니까 말이다. 88서울올림픽 당시 휘트니 휴스턴이 불렀던 ‘내 생애 한 순간’에 이런 대목이 있다. “(고된 과정을 거치면서) 이 순간, 내가 생각했던 나를 뛰어넘어, 모든 정답은 내가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진정한 자유를 갖게 될 거야” 결국 천재는 과정이지 결과가 아니다.
원광연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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