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고용’(Hire)이라는 제목을 공통적으로 단 단편영화 연작들이 인터넷에 선보였다. 유명 영화감독 리안과 왕자웨이,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가이 리치 등이 메가폰을 잡았다. 단편영화 속 주인공은 영국 액션배우 클라이브 오언이 매번 맡았다. 그는 매 영화 속에서 빼어난 운전 실력을 지닌 프리랜서 운전사로 묘사된다. ‘특별 작전’을 위해 고용돼 곡예운전으로 라마교의 어린 지도자를 구하거나 심장을 무사히 옮겨 아프리카 반군 지도자를 살린다.
‘고용’은 유명 자동차회사 BMW가 돈을 댔다. 오언은 영화 속에서 BMW 차량의 운전대만 잡았다. 광고 아닌 광고였던 셈이다. ‘고용’은 아름다운 영상미와 흥미로운 이야기로 BMW의 고급자동차 이미지를 부가시켰다. 프로젝트에 참가한 감독들은 BMW가 택한 감독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름값을 더 높였다. 서로의 가치를 올려준 ‘윈윈 프로젝트’였다.
이탈리아의 남성 고급 패션 브랜드 에르메네질도 제냐도 최근 특별한 단편영화 제작에 나섰다. ‘장미, 다시 태어난’(A Rose, Reborn)이라는 제목으로 영화와 패션의 만남을 시도한다. 중국계 미국배우 다니엘 우와 영국배우 잭 휴스턴이 참여했다. 영화의 지휘자는 박찬욱 감독이다. ‘장미, 다시 태어난’은 3개의 에피소드(각각 5분짜리)로 만들어져 이달부터 한편씩 온라인에 공개된다. 부산국제영화제 등 유명 영화제의 문도 두드릴 예정이다.
박 감독이 특정회사의 지원으로 단편영화를 만들기는 처음이 아니다. 2010년 국내 이동통신사의 지원을 받아 동생 박찬경 감독과 공동 연출한 ‘파란만장’으로 베를린국제영화제 단편경쟁부문 최고상(황금곰상)을 받았다. 2012년엔 아웃도어 의류업체를 위해 송강호 주연의 ‘청출어람’을 만들기도 했다. 박 감독과 해외 패션 브랜드의 협업은 좀 더 특별하다. 광고의 성격을 띤 영상물이긴 하지만 해외에서 박 감독의 명품 이미지를 좀 더 강화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아쉬움도 있다. 할리우드 진출작 ‘스토커’(2013) 이후 박 감독의 차기작은 아직도 안개 속이다. 단편 작업으로 영화에 대한 감각을 벼르고 있다고 하나 그의 다음 장편영화 소식을 더 듣고 싶다. 박 감독은 CF감독이 아닌 영화감독이지 않은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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