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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욱의 길 위의 이야기] 단수

입력
2014.08.31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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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수가 됐다. 하필 머리를 감는 중이었다. 이런 낭패가 있나. 그제야 며칠 전 문 앞에 붙었던 안내문이 떠올랐다. 상수도관 교체 공사로 수돗물 공급이 중단될 거라 했었지, 참. 날짜와 시간을 새겨두고 전날 밤엔 꼭 물을 받아놓아야겠다고 생각했건만 그새 잊고 만 것이다. 샴푸거품이 부글부글 묻은 손으로 집안에 남아있는 물을 뒤졌다. 생수 두 통과 커피포트에 약간. 급한 대로 생수를 따 머리를 대강 헹군 후 단수시간을 확인해 보았다. 9시부터 6시까지. 그런데 지금은 겨우 10시. 오후에는 약속이 있는데 어쩐담. 세수는 하다 만 셈이고 아직 밥도 먹지 않았고 화장실도 문제다. 일어나자마자 무심코 이미 레버를 눌러버린 터. 생수를 잔뜩 사다 세면대와 변기 물탱크에 부어버려? 아니면 눈 딱 감고 칫솔에 수건 챙겨 가까운 지하철역에 나가야 하나? 망설이는 사이 마침 옆집 화단 곁에 놓인 고무대야가 눈에 띄었다. 어제의 빗물이 찰랑찰랑 고여 있었다. 나는 양동이 가득 그 빗물을 훔쳐 뒤뚱거리며 집으로 옮겨 왔다. 그러고 나니 몸에서 후끈 열기가 올라 샤워를 하고 싶었지만 참을 수밖에. 하루치 펑펑 쓸 물을 이런 식으로 길어 와야 한다면 그저 까마득하겠지. 간신히 채비를 하고 나서니 골목에서는 노란 굴착기가 땅을 파고 있었다. 매설된 수도관이 언뜻 보였고, 어쩐지 나는 목이 말랐다. 수돗물을 잠시 못 쓰게 되었다고 기갈이나 들린 듯 허둥대는 도시인이라니, 참 딱한 노릇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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