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MP3업체 아이리버 10년 새 매출 6분의 1로 뚝
2009년 180만대 규모 내비시장 2013년엔 100만대로 반토막
디카 ·전자사전 공장들 문 닫아 신문사·잡지사도 직접적 타격
#서울에 사는 직장인 김지현(40)씨는 추석에 고향인 대구에 내려갈 수 없어 조카에게 모바일 문화상품권을 보냈다. 직접 만나 용돈을 줄 수 없으니 이보다 편한 방법이 없다는 생각에서다. 지현씨의 조카 이소담(16)양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명절에 용돈을 받으면 남성 아이돌 그룹 CD를 사러 달려가곤 했지만 더 이상 CD를 사지 않는다. 힙합에 빠져들기 시작한 뒤로 스마트폰에 끼워 쓸 고급 헤드폰을 사는 것이 올 가을 목표이기 때문이다.
#직장인 최명희(38)씨는 캐나다로 이민 간 예전 회사 동료 소식이 갑자기 궁금해 MSN메신저를 접속하려다 깜짝 놀랐다. 이미 몇 달 전에 MSN메신저 서비스가 종료됐다는 사실을 뒤늦게 안 것이다. 근무 시간에 틈만 나면 MSN메신저로 직장 상사를 흉 보고 속으로 깔깔거리던 게 기억 나 잠시 감상에 젖기도 했다. 좋아하는 음악을 MP3로 주고받으며 듣던 기억도 떠올랐다. 물론 그때 전송 받았던 MP3는 종적이 묘연하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3달여 앞둔 이달 초 G마켓은 수능선물용으로 e쿠폰 판매가 지난해 수능 100일 전 동기 대비 최대 6배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다. 반면 과거 수능 선물로 인기가 높았던 다이어리와 플래너 판매는 지난해 동기 대비 6% 감소했다고 한다. 스마트폰이 바꿔놓은 수능 D-100일 풍경이다.
스마트폰 덕에 현대인의 가방은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CD도 MP3플레이어도 필요 없다. 버스나 지하철로 이동할 때 시간 때우려 신문과 책을 찾지 않아도 된다. 디지털 카메라와 게임기가 없어도 언제나 사진을 찍을 수 있고 게임을 즐길 수 있다. 한 달 일정을 다이어리에 적는 것보다 스마트폰에 메모해놓고 찾는 것이 훨씬 편하다. 카카오톡과 라인만 있으면 친구와 채팅하기 위해 컴퓨터를 켜고 메신저를 실행시킬 필요가 없다. 지갑이 찢어질 만큼 많던 신용카드와 멤버십카드, 포인트카드도 스마트폰 하나면 말끔히 정리된다.
여행 갈 때도 스마트폰과 데이터로밍이 짐을 덜어준다. 트립어드바이저와 구글맵만 잘 활용하면 여행서적이나 지도가 별 필요 없다. 외국의 식당에 가서 메뉴판에 쓰인 낯선 단어를 찾으려 전자사전을 뒤적거리지 않아도 된다. 국내 여행이라고 스마트폰의 쓰임새가 줄진 않는다. 현장에서 티켓을 구매하거나 미리 예약한 티켓을 프린트하지 않아도 e티켓만으로 기차를 탈 수 있다. 차량용 내비게이션과 전국 지도를 챙기지 않아도 된다.
스마트폰이 가방 속 짐을 빨아들이는 사이 IT 하드웨어 제조업체들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상황이 가장 심각한 건 음악 관련 하드웨어 제조업체다. 세계적인 MP3플레이어 업체였던 아이리버는 2004년 4,500억원에 달하던 매출이 지난해 700억원으로 줄었다. 최대 400명에 이르던 본사 직원이 지금은 80~90명 정도다. 코원시스템도 MP3플레이어 판매가 급감하며 2009년 1,335억원이던 매출이 지난해 218억원으로 급감했다.
스마트폰에 MP3 파일을 다운로드 받는 사람도 사라지는 추세다. 국내 온라인 음원 유통 시장 1위 업체인 멜론에 따르면 2011년 1월 90 대 10 정도였던 스트리밍과 다운로드 이용 비율이 지난달에는 97 대 3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음악이 더 이상 소유하거나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흘려 보내는 상품이 된 것이다.
2009년 180만대 규모였던 국내 내비게이션 시장은 2013년 100만대 정도로 사실상 반토막이 났다. 스마트폰 내비게이션 애플리케이션이 시장을 잠식하면서 내비게이션 업체들이 줄도산했다. ‘똑딱이’라 불리는 소형 디지털카메라와 DMB플레이어, 전자사전, 만보기 등을 만드는 공장들은 대부분 문을 닫거나 품목을 바꾼 지 오래다.
신문사와 잡지사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스마트폰의 직접적인 타격을 받은 건 무가지 시장이었다. 지난해 무기한 휴간에 들어간 AM7을 시작으로 포커스신문, 시티신문, 스포츠한국, 데일리노컷뉴스 그리고 무료주간지 M25가 지하철에서 자취를 감췄다. 이 글이 실린 신문도, 그 옆 자리에 놓인 신문도 언젠가 겪을 수 있는 미래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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