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본품 다시 갖고 나가면 간이 통관, 출국시 보석 감정 없는 허점 이용
견본품 팔고 싸구려로 바꿔치기 10여차례 밀수입 홍콩인 구속기소
지난 4일 오후 2시경. 인천국제공항 세관에서 홍콩 국적의 한 남성이 통관 입국 절차를 밟고 있었다. 보석상으로 홍콩에서 국내로 다이아몬드 상품을 팔러 왔다는 이 남성은 “판매 업체에 보여줄 견본”이라며 목걸이 등 140여개 상품과 목록을 세관 직원에게 보여줬다. 견본이라는 이유로 이들은 24%에 이르는 수입세금을 내지 않아도 됐다. 남성이 통관 절차를 밟는데 걸린 시간은 15분 정도. 그러나 이 남성 뒤에서 수사기관 직원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서울중앙지검 외사부(부장 노정환)는 지난해 초부터 최근까지 10차례에 걸쳐 홍콩산 다이아몬드 상품 2,000여점을 밀수입한 뒤 국내 보석업체에 판매한 혐의(관세법 위반 등)로 홍콩인 C(47)씨를 구속기소했다고 28일 밝혔다. C씨가 몰래 들여온 다이아몬드 상품은 시가 7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검찰은 C씨가 국내에서 판매하고 남은 다이아몬드 상품 154점(4억원 상당)을 압수하고 32억원을 추징하기로 했다.
밀수입된 다이아몬드는 서울 명동이나 삼성동의 특급호텔, 청담동과 압구정동 등지에 있는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유명 귀금속업체에서 정상 제품으로 둔갑해 판매됐다. 일부 업체는 인터넷 홈페이지에 “고집스런 장인의 섬세한 세공기술로 완성된 핸드메이드 주얼리”라고 홍보까지 했지만 사실은 중국의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들어진 상품이었다.
당연히 C씨와 보석업체는 폭리를 취했다. 구매자에게 240만원에 판매된 다이아몬드 반지의 경우 귀금속업체가 C씨에게 살 때 준 돈은 절반인 120만원 정도. 애초 가격은 또 그 절반인 60만원 정도라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이 같은 밀수가 가능했던 것은 ‘ATA 까르네’(일시수입통관증서) 제도의 허점 때문이었다. ‘ATA 까르네’는 판매용 물품이 아닌 견본 제품이나 전시행사용 상품에 대해 다시 가지고 나간다는 전제로 간이 통관 절차를 밟도록 해주는 관세협정이다. 1961년에 채택된 협정에는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과 중국 등 74개국이 가입돼 있다. C씨는 입국할 때 가지고 온 다이아몬드 상품 대신 남대문 등지에서 1만원 이하의 값싼 모조품을 가지고 세관을 빠져나간 것으로 조사됐다. 세관에는 나갈 때 모조품인지 여부를 가릴 수 있는 보석감정사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현재 국내산 다이아몬드 완성 제품은 주문제작 형태로 극히 소량만 제조되고 있는데도 실제 유통규모는 연간 약 1조2,000억원에 이르고 있다”며 “대부분 상품이 외국산 밀수품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다이아몬드를 포함해 국내 전체 보석시장의 연간 거래 규모는 5조2,000억원 정도. 반면 거래에 따라 징수되는 세금은 50억원 정도밖에 안 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통상 보석류 상품을 국내로 들여올 경우 24% 정도를 수입세금으로 낸다.
검찰은 이날 C씨와 거래한 귀금속업체들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이는 등 추가로 밀수업자들과 거래가 있었는지를 캐고 있다. 또 정부는 단순 견본용 보석ㆍ귀금속 제품은 까르네 통관대상에서 제외하고 정식 일반수입신고 대상으로 전환하는 내용을 담은 등의 개선안을 오는 10월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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