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출판사 불공정 약관 시정
그림동화책 ‘구름빵’은 40만권 넘게 팔리고 애니메이션, 뮤지컬 등으로 제작되는 등 어린이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4,400억원대 부가가치를 만들어낸 작품이다. 이른바 ‘원 소스 멀티 유스’(One source multi use)의 성공사례였다. 하지만 작가인 백희나씨가 출판사로부터 받은 돈은 고작 1,850만원. 소설 ‘해리포터’가 영화화되며 영국 작가 조앤 K 롤링이 80억달러(8조7,000억원)가 넘는 수입을 올렸던 것과는 확연히 대비된다. 출판 계약 체결 시 저작자에게 일정 금액만 지불하고 이후 저작물의 2차 이용에 따른 미래 수익은 대부분 출판사가 챙기는 매절(買切) 계약이 뿌리 깊게 자리잡아온 우리 출판계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낸 사건이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런 매절 관행을 끊고 저작자 권리를 강화하기 위해 매출액 상위 20개 출판사의 저작권 관련 불공정 약관 4개를 시정했다고 28일 밝혔다.
공정위는 백씨의 피해 원인이 됐던 저작권 양도계약서를 손봤다. 출판사들은 지금까지 저작자와 출판 계약시 ‘저작재산권 전부와, 2차 저작물을 이용할 권리를 전부 출판사에게 넘긴다’는 내용의 약관을 사용했다. 공정위는 기존 약관의 저작재산권을 복제권 공연권 공중송신권 등 7가지로 세분화, 저작자와 출판사가 각각에 대해 선택적으로 양도 계약을 하도록 약관을 바꿨다. 콘텐츠를 2차 저작물로 이용할 때는 이와 별도로 특약을 맺도록 했다.
장편 소설 등에 적용되는 출판권 설정계약 약관도 바뀌었다. 기존 약관은 출판권 계약을 맺으면 번역 영화 디지털콘텐츠 등 2차 사용에 대해 출판사가 독점적 권한을 가졌다. 소설을 영화화할 때 저작자가 아닌 출판사가 계약 여부를 정하는 것은 물론, 수익률 배분까지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약관이 바뀌면서 저작물을 2차 콘텐츠로 가공할 때 저작자가 주도적으로 원하는 상대방과 계약할 수 있게 됐다.
저작자가 제3자에게 저작권을 양도할 때 출판사의 사전 동의를 받게 한 약관도 출판사에 사전 통보만 하면 되도록 고쳤다. 공정위는 또 일정시점까지 해지 의사를 통보하지 않으면 출판권이 계속 자동 갱신 되도록 한 기존의 출판 약관도 1년만 자동 연장하거나, 당사자끼리 기간을 합의한 뒤 1회만 자동 연장하도록 시정했다.
황원철 공정위 약관심사과장은 “저작물이 2차 콘텐츠로 가공되어 성공하더라도 창작자에게 정당한 보상이 돌아가기 어려운 기존의 불합리한 관행 개선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세종=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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