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소련의 스탈린 시절 비밀경찰 감옥으로 사용됐던 우크라이나의 한 고성에서 학살당한 1,000명 가까운 유해가 묻힌 집단무덤이 발견됐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27일 보도했다.
무덤이 발견된 곳은 폴란드와의 국경에 인접한 우크라니아 서부 도시 볼로디미르-볼린스키에 있는 13세기 고성. 이 고성은 독일이 점령했던 시기를 제외하고 옛 소련의 비밀경찰(NKVD)이 1939년부터 56년까지 감옥으로 이용했다. 발굴 작업을 벌인 우크라이나와 폴란드 고고학자들은 희생자들이 40년과 41년 사이에 학살당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고고학자 알렉시 즐라토고르스키는 “약 950명의 유해를 발견했으며 이중 일부는 폴란드 병사들이며 나머지는 민간인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장에서 옛 소련의 PP권총용 탄피들도 발견됐는데 이는 희생자들이 40년에서 41년 사이에 NKVD에 학살됐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조사에 참여한 폴란드 과학자 도미니카 시에민스카는 NKVD가 개머리판으로 희생자 시신들을 으스러뜨린 것으로 보이며 시신을 매장하면서 석회를 뿌렸다고 말했다.
폴란드 현지 언론은 이번 무덤 발견을 새로운 ‘카틴 학살’사건으로 규정하면서 옛 소련이 폴란드를 상대로 저지른 범죄를 새롭게 보여주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카틴 학살’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40년 4월, 5월 폴란드인 2만여 명이 러시아 서부 스몰렌스크 인근의 카틴 숲 등에서 옛 소련 비밀경찰에 총살당한 사건을 일컫는다. 스탈린이 폴란드 독립의 씨를 자르기 위해 이 나라 지식인들을 처형하라는 비밀명령을 내린 데 따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많은 폴란드인은 옛 소련의 유산을 승계한 러시아가 과거사에 대한 보상에 나서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러시아의 공산당원을 비롯한 일부 인사들은 여전히 카틴 숲 학살은 나치 독일군이 저지른 일이라며 스탈린 책임론을 부정하고 있다. 2010년 4월에는 카틴 숲 학살 추모 행사에 참석하러 가던 레흐 카친스키 전(前) 폴란드 대통령 부부와 정부 고위인사 등 96명이 탄 특별기가 학살 현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추락해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한편 우크라이나 당국은 발굴을 계속해 다음 달 23일 희생자 유해를 시립 묘지에 안치하고 추도비를 세울 예정이다.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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