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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분단 조국 함께 견뎌 온 우리는 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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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분단 조국 함께 견뎌 온 우리는 동지"

입력
2014.08.2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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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고려인·원폭 피해자 등 18명 다른 환경서 겪은 삶 구술하며 공유

2012년부터 시작해 11차례 진행 참가자 대화내용 책으로 출간 계획

27일 경기 안산 엑스퍼트 연수원에서 열린 ‘한민족다문화: 삶의 역사 이야기’ 행사에 탈북자와 사할린 동포, 원폭 피해자, 고려인 등 동시대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이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주성기자 poem@hk.co.kr
27일 경기 안산 엑스퍼트 연수원에서 열린 ‘한민족다문화: 삶의 역사 이야기’ 행사에 탈북자와 사할린 동포, 원폭 피해자, 고려인 등 동시대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이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주성기자 poem@hk.co.kr

“히로시마 폭심지역 1.6km에 있는 쌀 배급소에서 일했습니다. 회사로 출근해 사무실 문을 열려던 순간 뭔가가 반짝 합디다. 얼굴에 파편이 박혔는데 일주일 간 치료를 못 받아서 나중에는 구더기가 나오고…”(원자폭탄 피해자 안월선ㆍ84)

“집 앞마당에서 나무 그네를 타고 있었는데, 비행기가 새까맣게 몰려와 집을 폭격하고 갔어. 불바다 속을 맨발로 뛰쳐나온 게 생생하게 기억 나. 6ㆍ25 전쟁 이후로 일생을 고아로 산 거지.”(탈북자 Aㆍ69)

탈북자, 사할린 동포, 원자폭탄 피해자, 고려인(옛 소련 거주 한인) 등 동시대 다른 삶을 살아온 이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각기 다른 환경에서 경험한 삶을 공유함으로써 서로에 대한 오해나 편견을 불식시키고, 나아가 우리사회 내 다양한 이주 집단을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27일 한양대 글로벌다문화연구원이 주관한‘한민족다문화: 삶의 역사 이야기’행사가 경기 안산 단원구 엑스퍼트 연수원에서 열렸다. 귀환 이주 한인, 북한이탈주민, 실향민 등 총 18명이 6명씩 나눠 총 3차례에 걸쳐 각자의 삶을 구술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다. 지난 주말 1박 2일 일정으로 1차 구술자 6명이 다녀갔고, 이날은 안 할머니와 A씨 외에도 고려인 이안톤(62)씨, 조선족 박전옥(81) 할머니, 사할린 동포 장일삼(81) 할아버지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한 명씩 1시간 가량 자신이 살아온 삶을 압축해서 이야기한 뒤 다 함께 1분 가량 명상의 시간을 가졌다. 짧은 순간이지만 그 사이 상대방이 살아온 삶을 되새겨보자는 의미다.

비록 삶의 터전은 달랐지만 전쟁과 분단 조국의 시대를 함께 견뎌왔던 동지의식 때문일까. 탈북자 A씨가 어릴 적 전쟁으로 고아가 된 이야기를 시작하자 조선족 박 할머니는 연신 손수건을 눈가에 가져갔다. 일제시대이던 7세 때 어머니 손을 잡고 중국에 건너갔으나 아편쟁이들에게 옷가지까지 털리는 등 가난 속에 신산한 삶을 살았던 박 할머니는 A씨의 사연을 자기 일 인양 안쓰러워 했다.

박 할머니와 동갑내기인 사할린 동포 박 할아버지 심정도 다르지 않았다. 7세 때 아버지를 따라 조국을 떠난 장 할아버지는 모스크바 명문대학을 나온 엘리트였지만 한국인 임을 잊을까 러시아말 배우기를 싫어했던 학창 시절을 떠올렸다. 95년 영주 귀국한 장 할아버지는 “어디에서 무엇을 했던 그 시절 삶 하나하나가 모두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조일동 글로벌다문화연구원 연구교수는 “다문화 사회가 1990년대 후반 이후 갑자기 찾아온 것처럼 생각하지만 사실은 우리 안에 오랫동안 자리해왔다”며 “한민족은 역사상 많은 구성원들이 여러 나라로 퍼져 나가 삶을 살았고 지금은 그들이 같이 모여 살고 있다”고 말했다.

2012년 9월부터 시작된 프로그램은 지난해까지 총 9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지난해 있었던 행사에서는 빨치산 토벌을 했던 국군 출신과 38선을 지켰던 인민군 출신이 만나 ‘무슨 일이 있어도 전쟁은 없어야 한다’며 극적으로 화해하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연구원측은 참가자들이 구술한 내용을 책으로 엮어 이르면 올 하반기 출간할 계획이다.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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