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생뚱맞게 들릴지 모르겠다. 해외에 한국 문화원을 설립하는 것도 아니고, 동남아 문화원을 한국에 만들겠다고 하고, 그것도 우리 정부가 문화원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하면 그게 무슨 소리냐고 하는 분이 있을 것이다.
그 동안 반세기 넘게 외교부에 몸담은 후 동남아에 필이 꽂혀 운 좋게 그 분야에서만 일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느낀 점은 우리나라의 국력이 성장하고, 또 동남아의 한류 인기 때문에 동남아에서 한국 문화가 잘 알려지고 있고, 한국 이미지도 이에 따라 좋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반대는 어떨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한국 내 동남아 문화와 나아가 동남아 국민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 말이다.
동남아 국민 중 이주 노동, 결혼, 유학 등으로 한국에 거주하는 인구가 30만명 가량이고, 다문화 가정 자녀 등을 포함하면 100만명에 육박한다. 매주 방영되는 TV 프로그램 ‘러브 인 아시아’와 일요일 아침 드라마에 등장하는,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베트남 여성의 모습은 동남아 국민과 우리가 더불어 사는 삶이 먼 나라 얘기가 아님을 보여준다.
그런데 우리가 동남아 국민을 어떻게 보며, 얼마나 알고 있는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앙코르 와트, 보로부두르 불교 사원, 바간 유적, 아유타야 불교 유적 등 동남아의 수없이 많은 찬란한 문화 유산에 대해 우리는 얼마만큼 제대로 알고 있으며 그 가치를 인정하고 있는가. 혹시 우리는 동남아를 잠시 여행가서 본 모습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아니면 한국으로 시집온 동남아 신부들이 문화적 차이와 어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안타까운 선택을 했다는 뉴스 등을 접하면서 경위가 어떻게 됐든 간에 동남아에 대해 잘못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묻고 싶다.
기성 세대의 뿌리깊은 편견은 어차피 쉽게 바뀌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우리 자라나는 세대들의 인식은 변화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하며 또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만약 동남아 문화원이 설립된다면 우리 자녀들이 그 곳에 가서 동남아 10개국의 전시관을 둘러보면서 그 나라들의 찬란한 문화를 몸소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자녀들이 나와 다른 문화적 ‘차이’를 차별이 아닌 ‘개성적 다름’으로 수용하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 쌍방 문화 교류 차원에서도 동남아 내 한류 인기 등으로 인한 한국 문화의 일방적 전파가 아닌 한국 내 동남아 문화 전파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는 특히 우리가 당면한 다문화 가정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수용이라는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물론 우리의 비용으로 동남아 문화원을 설립하는 데 문제를 제기하는 이도 있을 줄 안다. 하지만 동남아 국가들은 몇 개국을 빼고는 아직도 개발도상국이다. 그래서 국가 차원에서 문화적 자원에 힘을 쏟을 여력이 아직 없다. 미래 투자라 생각하고 동남아 문화원을 지어줄 수는 없을까. 우리가 동남아국가연합(ASEAN)으로부터 연간 교역으로 벌어들이는 돈이 270억달러나 된다. 아세안은 우리의 핵심파트너로서 교역ㆍ투자 및 건설 수주 2위 국가이며, 우리 국민의 1위 방문 대상국이다. 동남아 10개국이 이처럼 우리 경제에 중요한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일본, 중국도 자국 내 동남아 문화원을 설립해 주냐고 물어본다. 그런 사례는 없다. 그렇기에 더욱 우리가 먼저 동남아 문화원을 설립했으면 한다.
마침 12월 부산에서 한국과 동남아 10개국으로 구성된 한-ASEAN 간 대화 관계 수립 25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정상회의가 개최된다. 우리 대통령과 ASEAN 10개 정상들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될 이 기회에 그들이 나란히 서서 동남아 문화원 기공식 행사에 참여하는 것을 보고 싶다. 그런 소망이 나만이 아닌 우리 국민 모두의 소망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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