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황대기를 빛낸 스타는
봉황대기 고교야구대회는 41년 간 불세출의 스타 플레이어를 배출한 한국 야구의 역사와 닮았다.
봉황대기가 낳은 최고 스타는 ‘코리안 특급’ 박찬호(전 한화)다. 공주고 시절 동기생인 손혁에 가려 두각을 나태지 못한 박찬호는 3학년 때인 1991년 제21회 대회 2회전에서 광주일고에 단 2안타만 내 주며 완봉승을 거뒀다. 당시 선발 맞대결 투수는 박재홍(전 SK)이었다. 박찬호는 봉황대기와 악연도 가지고 있다. 1학년이던 1989년 휘문고와의 16강전에서 초고교급 타자 고(故) 박정혁에게 3연타석 홈런을 얻어 맞는 수모를 당했다. 박찬호를 무너뜨린 박정혁은 다음 날 광주진흥고와의 경기 첫 타석에서도 홈런을 치며 박병호(넥센)에 앞서 고교야구 사상 최초로 4연타석 홈런의 주인공이 됐다.
지금은 고인이 된 조성민도 신일고 3학년이던 1991년 모교에 봉황대기 첫 우승을 안기며 최우수투수상을 받았다. 조성민은 홈런왕까지 차지하며 타격에서도 맹활약했다. 1993년 경북고 준우승 당시 이승엽(삼성)은 선발투수 겸 4번타자로 활약했고, 1991년 배명고 우승 때는 김동주(두산)가 최우수투수상과 함께 단일 대회 최다홈런(18개)을 기록하기도 했다. 김재박 전 LG 감독은 2학년이던 1971년 봉황대기 원년에 대광고 2루수로 출전, 팀의 준우승을 이끌며 인연을 맺었다. 김 감독은 “봉황기 첫 대회 결승에서 남우식, 천보성 같은 쟁쟁한 선수들이 버틴 경북고에 0-1로 아깝게 졌다”며 “모든 고교 팀들이 출전하게 된 첫 대회였고, 동대문구장은 인산인해를 이뤘다”고 당시 뜨거웠던 분위기를 회상했다. 조범현 KT 감독은 1977년 충암고 우승 당시 최우수선수(MVP)에 올랐다.
1973년엔 타격상과 최다안타상을 받으며 대구상고의 우승을 이끌었던 ‘타격의 달인’ 장효조가 스타덤에 올랐다. 고(故) 장효조는 이듬해에도 타율 4할1푼2리에 도루 8개로 2년 연속 우승의 주역이 됐다. 선동열 KIA 감독은 1980년 경기고와 경기에서 노히트노런을 달성했고, 같은 대회에서 이종두(삼성 코치)는 고교야구 첫 사이클링히트를 작성했다. 1981년엔 박노준, 김건우(이상 선린상고)와 문병권, 성준(이상 경북고) 등 고교 스타들이 명승부를 펼쳤고, 군산상고 조계현(LG 2군 감독)은 대구고와의 8강전에서 무려 삼진 18개를 잡아 냈다. 1985년 고(故) 박동희는 5경기에서 10안타만 내 주며 평균자책점 ‘0’의 전무한 기록을 달성했다. 성환희기자 hhs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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