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세 이상 운전자가 일으킨 사고 20년 새 17배 이상 증가
순발력 등 떨어지는데도 판별 안 돼 운전 부적격자 걸러 내게 개선해야
지난달 14일 오전 서울 봉천동 쑥고개길을 자신의 승용차로 주행하던 이모(74)씨는 신호대기 중이던 오토바이를 뒤에서 시속 30㎞ 속도로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오토바이 운전자는 병원으로 옮겨져 전치 2주의 치료를 받아야 했다. 경찰 조사결과 이씨는 눈이 침침해 앞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고, 브레이크 페달을 재빨리 밟지 못할 정도로 순발력이 떨어졌다.
운전 능력이 떨어지는 고령 운전자들로 인한 교통사고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65세 이상 면허소지자는 186만9,155명(2013년 기준)에 달한다. 운전자의 신체상태를 검증할 수 있는 운전면허 적성검사 체계를 실효성 있게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6일 도로교통공단의 ‘2013년 교통사고 통계분석’에 따르면 65세 이상 운전자가 야기한 사고는 1993년 1,082건에서 지난해 1만7,549건으로 20년 새 16배 이상 급증했다. 이런 증가세는 모든 차종에서 동일하게 나타났다. 같은 기간 승용차(525→1만312건), 승합차(91→1,026건), 화물차(117→2,503건), 이륜차(199→1,479건) 등 전차종에서 고령 운전자로 인한 교통사고는 7~20배 늘었다.
그러나 현행 적성검사는 시력검사 위주로 이뤄지고 있어 운전 능력이 떨어지는 고령 운전자를 판별하기에 부족하다. 운전면허 적성검사는 1종 면허 운전자가 면허를 취득한 후 일정 주기(5~10년)로 면허를 갱신할 때 여전히 운전 능력을 갖고 있는지 검사하는 것이다.
도로교통법 시행령 45조는 ‘적성검사 시 운전자가 ▦두 눈을 동시에 뜨고 잰 시력이 0.8 이상, 각 눈의 시력이 0.5 이상이고 ▦55데시벨의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운전 장치를 자유롭게 조작할 수 있을 만큼 신체ㆍ정신적 장애가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청력검사는 1종 대형ㆍ특수 면허 소지자에 한정되고 신체ㆍ정신적 장애를 확인하는 절차는 장애인 운전자만 대상으로 한다.
운전자조차 유명무실한 적성검사에 불안감을 갖고 있다. 올해 6월 도봉운전면허시험장에서 적성검사를 받은 성찬송(62ㆍ운전경력 26년)씨는 “10여년 전 뇌졸중으로 왼쪽 다리의 운동신경이 둔해졌는데도 이를 확인하지 않았다”며 “조금 불편하더라도 검사 항목을 늘려서 균형감각이나 순발력 등이 떨어져 안전운전을 하지 못하는 사람을 걸러내야 한다”고 말했다.
적성검사를 1종 면허 소지자만 받는 것도 문제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2종 면허 적성검사는 2000년 폐지돼 2종 면허 운전자는 신체검사를 받지 않고 면허를 갱신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전체 운전자 중 2종 면허를 보유한 사람은 지난해 12월 기준 35%에 달한다. 도로교통법은 70세 이상이면 2종 면허 운전자도 적성검사를 받도록 보완 조치를 마련해 놓았지만, 70세 미만 고령 운전자에 대한 운전능력 검증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도로교통공단은 “시행령에 따라 검사를 실시할 뿐 운전자의 건강 상태를 하나하나 따지기는 어려운 형편”이라고 해명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운전자들의 편의상 적성검사 항목을 간소화하다 보니 안전과는 멀어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고령화 시대 교통안전을 위해 적성검사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금기정 명지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현행 적성검사로는 나이가 들어 운전이 불가능한 사람도 면허를 갱신할 가능성이 있다”며 “노인들의 치매 우울증 등을 검진하는 항목을 추가하고 검사 대상도 면허 종류를 가리지 않고 전체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장재진기자 blan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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